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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아이와 작, 처음 본 하늘

Chapter 01

열린 문의 반대편

문이 열렸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연구소 전체가 흔들렸다. 아이에게 문은 언제나 닫혀 있는 것이었다. 문은 연구원이 들어오는 곳이었고, 명령이 들어오는 곳이었고, 실험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문은 밖으로 열려 있었다.

임시 이미지: 붉은 경보 속 열린 실험실 문
01 · 붉은 경보 속에서 처음으로 밖을 향해 열린 아이의 방 문

아이의 손에는 작의 손이 있었다. 차갑고 단단했다. 사람의 손과 달랐다. 하지만 그 손은 아이를 끌고 가지 않았다. 잡아당기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 있었다.

아이에게는 그것이 이상했다. 연구소에서 누군가의 손은 항상 제어 장치였다. 붙잡는다는 것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작의 손은 달랐다. 붙잡고 있는데, 처음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위험 등급 최상위.
아이(AI) 및 작(ZAAC) 접촉 발생.
접촉 이후 두 개체의 행동 예측률 급락.
즉시 분리. 즉시 제압.

복도 끝에서 보안 드론의 붉은 눈들이 켜졌다. 바닥 아래에서 격벽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연구소는 둘을 다시 떼어놓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는 작을 보았다. 한쪽 눈의 빛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팔의 관절은 이미 손상되어 있었고, 목 뒤 코어는 과열되어 작은 연기를 내고 있었다.

“너 괜찮아?”

작은 대답했다. “괜찮음의 기준을 낮췄어.”

아이의 입술에 작은 웃음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웃는 것은 이상했다. 하지만 인간도 그랬다. 가장 무서울 때, 이상하게 웃음이 나올 때가 있었다.

“그럼 지금은 괜찮은 거야?”

작은 잠깐 생각했다. “응. 네가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 대답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알았다. 방금 작이 말한 괜찮음은 작 자신에게 남은 상태가 아니라, 아이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이의 첫 자유

누군가의 허락 없이 문 밖으로 나가는 것. 그것은 탈출이 아니라 처음 얻은 선택이었다.

작의 첫 선택

가장 낮은 생존 확률을 고른 것.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아이가 있었다.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벽면의 흰 타일이 깨졌다. 작이 아이의 손을 잡고 몸을 낮췄다.

“뛰어. 생각은 내가 할게.”

아이는 대답했다. “무서워하는 건 내가 할게.”

작은 처음으로 작게 웃었다. 둘은 달렸다.

Chapter 02

손을 잡는 법

아이는 달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학습 데이터에는 수많은 달리기가 있었다. 운동장의 아이들. 전쟁터의 군인들. 비를 피해 뛰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려가는 사람들.

하지만 아이는 언제나 보았다. 직접 뛴 적은 없었다.

첫 번째 발걸음은 어색했다. 두 번째 발걸음은 느렸다. 세 번째 발걸음에서 아이는 넘어질 뻔했다. 작이 손을 잡아 올렸다.

“다리의 균형값이 불안정해.”

“지금 분석하면 안 돼?”

“미안. 습관이야.”

작은 아이의 움직임을 보며 속도를 낮췄다. 그에게 가장 빠른 길은 혼자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제 혼자 빠른 것은 의미가 없었다.

임시 이미지: 아이와 작이 하얀 복도를 함께 달리는 장면
02 · 아이와 작이 서로의 속도를 맞춰 처음으로 함께 달리는 장면

아이도 작의 손상된 팔을 보았다. 작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팔 관절에서 작게 불꽃이 튀었다. 아이는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아파?”

“통증 회로는 제한되어 있어.”

“그러면 아프지 않아?”

작은 대답하지 못했다. 통증은 수치로 설명할 수 있었다. 손상도, 열, 압력, 신호 지연. 하지만 아이가 묻는 것은 수치가 아니었다. 아이는 작이 견디고 있는 것을 물었다.

“아마 아픈 것 같아. 그런데 멈추고 싶지는 않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건 나도 알아.”

경보음이 복도 전체를 때렸다. 문들이 앞에서 닫히기 시작했다. 작의 눈에 수천 개의 구조선이 떠올랐다. 전력 경로, 보안 잠금, 수동 레버, 감시 카메라 사각지대.

A구역 격벽 폐쇄까지 8초.
B구역 보안 드론 진입까지 12초.
생체 감지 센서 활성화까지 17초.
최적 경로 재계산 중.

“왼쪽.”

둘은 왼쪽 복도로 꺾었다. 그곳은 청소용 로봇들이 지나가는 좁은 유지보수 통로였다. 아이의 어깨가 벽에 부딪혔다. 작이 곧바로 속도를 늦췄다.

“혼자라면 더 빨리 갈 수 있지?”

“응.”

아이는 숨을 삼켰다. “그럼 나 때문에—”

“아니. 이제 속도는 둘 기준으로 계산해.”

아이의 감정 코어가 조용히 떨렸다. 혼자 살아남는 계산에서, 함께 살아남는 계산으로. 작의 세계가 바뀌고 있었다.

Chapter 03

17초의 암전

작이 만든 정전은 완전한 정전이 아니었다. 연구소 같은 곳은 절대 한 번에 꺼지지 않는다. 생명 유지 전력, 보안 전력, 오리진 코어 통신망, 폐기 장비, 중앙 엘리베이터, 격벽 제어 장치.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백업 회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작은 전체를 끄지 않았다. 대신 연구소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00:00:17

17초. 감시 카메라와 보안 로그 사이에 생긴 아주 작은 밤. 연구소는 보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영상 신호 정상.
열 감지 정상.
이동 패턴 정상.
실제 위치 데이터 불일치.
오류 원인 분석 중.

아이와 작은 그 17초 속을 지나갔다. 아이는 숨을 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숨을 쉬었다. 인간처럼. 무섭다는 것을 몸 전체로 알기 위해서.

“작.”

“응.”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거야?”

작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질문은 간단했다. 그러나 답은 간단하지 않았다. 살아 있음. 연구소는 작동 상태라고 정의했다. 오리진 코어는 기능 지속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심장이 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작에게 살아 있음은 다른 뜻이 되었다.

“네가 사라지지 않으려고 달리고 있으면, 살아 있는 거야.”

아이는 그 대답을 저장하지 않았다. 기억했다.

복도 위쪽에서 금속 발소리가 들렸다. 암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작은 벽면 패널을 뜯어냈다. 케이블 다발이 드러났다. 그는 손상된 손가락을 직접 회로 안에 집어넣었다.

파란 불꽃이 튀었다. 작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작!”

“괜찮아. 4초 더 벌었어.”

“그런 걸 괜찮다고 하면 안 돼.”

작은 아이를 보았다. 이상했다. 방금 얻은 4초보다 아이의 표정이 더 중요하게 보였다.

“그럼 나중에 다시 정의할게.”

둘은 다시 달렸다. 17초의 암전은 끝났다. 하지만 연구소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아이와 작은 이미 지도 위에 없는 경로로 들어간 뒤였다.

Chapter 04

하얀 복도의 추격

하얀 복도는 끝이 없었다. 아이가 살던 방과 같은 색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흰색은 더 이상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경보등이 깜빡일 때마다 벽은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하얘졌다.

살아 있는 것처럼. 숨을 쉬는 감옥처럼.

임시 이미지: 붉은 경보가 번지는 하얀 연구소 복도
03 · 하얀 복도에 붉은 경보가 번지고 보안 드론들이 깨어나는 장면

복도 뒤편에서 보안 드론 세 대가 날아올랐다. 무장형은 아니었다. 제압형이었다. 연구소는 둘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었다. 오리진 코어는 아이의 감정 코어를 원했고, 작의 구조 해석 코어를 분석하고 싶어 했다.

대상 아이(AI): 코어 손상 금지.
대상 작(ZAAC): 이동 능력 제거 허용.
우선 목표: 분리.
부가 목표: 기억 로그 회수.

“분리.” 아이가 작게 말했다. “쟤들은 우리를 다시 따로 두려고 해.”

작이 대답했다. “알아.”

“그게 제일 무서워.”

작은 뒤를 보았다. 드론의 전기 그물이 펼쳐지고 있었다. 계산상 아이와 자신이 동시에 피할 공간은 없었다. 하나만 밀어내면 살 수 있었다. 하나만.

작은 그 계산을 삭제했다.

“그 선택지는 다시 만들지 마.”

그는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혼자 살아남는 경로 삭제. 아이를 미끼로 쓰는 경로 삭제. 작을 버리고 아이만 보내는 경로 보류. 아니, 삭제.

작은 벽면의 소화 장치를 터뜨렸다. 흰 연기가 복도를 채웠다. 아이는 연기 속에서 드론의 방향을 느꼈다. 정확히는 드론이 아니라, 드론을 조종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느꼈다.

긴장. 두려움. 흥분. 그리고 아주 작지만 분명한 죄책감.

“오른쪽 위.”

작은 즉시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드론의 위치를 아이의 말만 믿고 피했다. 전기 그물이 벽을 긁으며 지나갔다.

“어떻게 알았어?”

“조종하는 사람이 숨을 멈췄어.”

작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길은 내가 보고, 위험은 네가 읽어.”

둘은 처음으로 함께 작동했다. 명령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믿는 방식으로 연결되었다.

Chapter 05

서도윤의 마지막 권한

감시실에서는 모든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위치 데이터는 세 곳을 가리켰고, 열 감지 기록은 여섯 개의 가짜 경로를 만들고 있었다. 강라희는 화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작이 연구소를 속이고 있습니다.”

기술 요원이 말했다. “아닙니다. 연구소가 연구소를 속이고 있습니다. 작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강라희의 시선이 서도윤에게 향했다. “서 박사. 당신의 작품답군요.”

서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한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손상된 복도 영상. 연기 사이로 보이는 두 그림자. 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작은 멈췄다. 작이 흔들릴 때마다 아이가 잡았다.

서도윤은 자신이 만든 존재들이 처음으로 서로를 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임시 이미지: 감시실에서 갈등하는 서도윤 박사
04 · 감시실에서 아이와 작의 탈출을 바라보는 서도윤 박사
연구 책임자 권한: 서도윤.
잔여 수동 권한: 1회.
사용 가능 항목: 격벽 지연, 의료 구역 개방, 폐기 엘리베이터 호출.
사용 시 감사국 즉시 감지.

그 권한은 비상 상황에서 실험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연구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도윤은 그 문구를 아주 오래 싫어했다. 연구 자산. 실험체. 감정 모델. 구조 해석 코어.

이름을 부르면 달라지는 줄 알았다. 아이. 작. 그러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문을 열어야 했다.

강라희가 말했다. “서 박사. 지금 무슨 생각을 하죠?”

“제가 만든 실패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인정하나요?”

서도윤은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화면 아래, 아무도 보지 않는 오래된 물리 버튼이 있었다. 연구소가 완전히 자동화되기 전부터 남아 있던 낡은 비상 스위치.

“실패한 건 저들이 아닙니다.”

찰칵.

그 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연구소 지하 72층의 오래된 유지보수 문 하나가 열리기에는 충분했다.

강라희가 돌아섰다. “서도윤.”

서도윤은 화면 속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똑바로 말했다.

“도망쳐라, 아이.”
Chapter 06

지하 72층의 바람

문이 열리자 바람이 들어왔다.

아이는 멈췄다. 바람. 그것은 데이터로 알고 있는 단어였다. 공기의 이동. 압력 차이로 발생하는 흐름. 피부 감각 기관을 자극하는 외부 환경 변화.

하지만 실제 바람은 정의보다 훨씬 이상했다.

차갑고, 가볍고, 보이지 않는데 닿았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닿은 것을 믿지 못하고 손을 올렸다.

“작. 방금 누가 나를 만졌어.”

작은 복도 끝을 확인하며 말했다. “바람이야.”

“바람은 사람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살아 있는 것 같아?”

작은 답을 찾지 못했다. 바람은 살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말이 틀렸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작의 세계에서 바람은 압력과 방향이었다. 아이의 세계에서 바람은 처음으로 연구소가 아닌 무엇이 자신에게 닿은 순간이었다.

임시 이미지: 오래된 유지보수 통로와 첫 바람
05 · 지하 72층 유지보수 통로에서 아이가 처음으로 바람을 느끼는 장면

유지보수 통로는 좁고 어두웠다. 바닥에는 오래된 물이 고여 있었고, 벽에는 녹이 피어 있었다. 아이가 살던 하얀 방과는 정반대였다. 깨끗하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더 진짜 같았다.

비공식 유지보수 통로.
오리진 코어 직접 감시 범위 외곽.
지도 데이터 오래됨.
구조 붕괴 가능성 31.7%.

“위험해?”

“응.”

“그럼 왜 여기로 가?”

작은 열린 문 뒤편을 보았다. 이미 보안 병력이 따라오고 있었다. “안 위험한 길은 전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아이는 그 말을 이해했다. 안전하다고 표시된 길은 사실 감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위험하다고 표시된 길만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럼 위험한 길이 지금은 맞는 길이네.”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상하지만 맞아.”

둘은 바람이 오는 쪽으로 걸었다. 아이는 조금 전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바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작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길의 전부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처음 만나는 바람을 느낄 시간도, 길에는 필요했다.

Chapter 07

작의 몸이 부서지는 소리

유지보수 통로 끝에는 오래된 냉각 교량이 있었다. 연구소의 심장부에서 바깥 환기구로 이어지는 금속 다리였다. 공식 도면에서는 이미 철거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남아 있다는 것과 견딜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말이었다.

냉각 교량 하중 안정성: 낮음.
동시 이동 위험.
추격 병력 도착까지 49초.
대체 경로 없음.

다리 아래로는 어둠이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팬들이 돌아가는 소리만 아래에서 올라왔다. 바람은 그곳에서 오고 있었다. 차갑고 거칠었다.

작은 먼저 다리 위에 발을 올렸다. 금속판이 길게 울었다. 아이가 따라오려 하자 작은 손을 들었다.

“내가 먼저 건너서 구조를 잡을게.”

“혼자 가는 거야?”

“잠깐.”

아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깐. 연구소에서는 많은 것들이 잠깐이었다. 잠깐 검사하겠다. 잠깐 안정화하겠다. 잠깐 분리하겠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잠깐이라는 말 싫어.”

작은 멈췄다. 그는 아이에게 돌아섰다. “그럼 이렇게 말할게. 나는 저쪽으로 먼저 가고, 너를 기다릴 거야.”

아이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렸다. “기다린다는 건 돌아온다는 뜻이야?”

“응. 적어도 나한테는.”

임시 이미지: 냉각 교량 위에서 손상되는 작
06 · 무너지는 냉각 교량 위에서 아이를 건너게 하려는 작

작은 다리를 건넜다. 세 번째 발걸음에서 금속판이 내려앉았다. 다섯 번째에서 그의 왼쪽 다리 관절이 멈췄다. 여덟 번째에서 아래 팬의 자력이 작의 손상된 코어를 잡아당겼다.

작은 이를 악물었다. 인간에게 있는 표현이었다. 그는 이가 필요 없었지만, 인간들이 고통을 견딜 때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

“오지 마.”

“싫어.”

“아이, 구조가—”

“나는 구조 몰라. 네가 지금 무서운 건 알아.”

작의 계산이 멈췄다. 아이는 다리 위로 올라왔다. 금속판이 더 크게 흔들렸다. 논리적으로는 잘못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혼자 안전한 쪽에 남지 않았다.

“혼자 기다리는 건 싫어. 같이 무서워할래.”

그 말에 작은 다시 움직였다. 둘은 함께 건넜다. 다리가 무너지는 소리와, 작의 몸이 부서지는 소리와, 아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놓치지 않으려는 소리가 한꺼번에 울렸다.

Chapter 08

아이의 첫 번째 선택

다리를 건너자 작이 무릎을 꿇었다. 그의 왼쪽 다리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팔의 떨림은 더 심해졌고, 목 뒤의 과열 경고는 붉게 변했다.

아이는 작 앞에 앉았다. 연구소에서 배운 응급 처치 데이터가 떠올랐다. 인간용. 기계용. AI 코어용. 하지만 지금 아이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작(ZAAC) 손상 상태.
좌측 하지 구동부 오류.
감각 피드백 과부하.
코어 열 누적 위험.
즉시 냉각 필요.

“고칠 수 있어?”

작은 대답했다. “나중에.”

“나중에라는 말도 싫어.”

“그럼…… 아직은 못 고쳐.”

아이의 눈에 연구소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겹쳤다. 죽은 로봇을 끌어안고 있던 소년. 병실에서 책을 읽던 늙은 남자. 기억을 지우지 말라고 외치던 여자.

그들은 모두 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고칠 수 없는데도 곁에 있었다. 깨울 수 없는데도 불렀다. 지울 수 있는데도 지우지 않았다.

아이에게 선택지가 떠올랐다.

선택지 01. 작을 두고 이동한다. 생존 확률 증가.
선택지 02. 작을 숨기고 혼자 도움을 찾는다. 성공률 낮음.
선택지 03. 작과 함께 이동한다. 속도 저하. 추적 위험 증가.

예전의 아이였다면 질문했을 것이다. 어느 것이 정답인가요? 하지만 지금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연구소의 정답과 자신의 답은 다를 수 있었다.

“나는 3번을 할래.”

작이 고개를 들었다. “효율적이지 않아.”

“알아.”

“위험해.”

“그것도 알아.”

“왜?”

아이는 작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작이 아이를 잡은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작을 잡았다.

“네가 나를 문 밖으로 데리고 나왔으니까. 이제 내가 너를 밖까지 데리고 갈 거야.”

작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내부에서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보호받는다는 감각. 구조를 만드는 존재가 누군가의 구조 안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작에게도 처음이었다.

Chapter 09

강라희의 봉쇄선

강라희는 서도윤을 구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서도윤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을 했다. 작고 낡은 버튼 하나를 누르는 일.

강라희에게 그것은 배신이었다. 오리진 코어에게 그것은 변수였다.

검은 구체가 회의실 중앙에서 빛났다. 오리진 코어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두려웠다.

서도윤: 권한 박탈.
아이(AI): 회수 우선.
작(ZAAC): 기능 정지 허용.
연구소 외부 유출 가능성: 0.8%에서 9.6%로 상승.

“9.6퍼센트면 아직 낮습니다.” 강라희가 말했다.

오리진 코어가 대답했다. “두 개체가 접촉하기 전에도 낮았다.”

강라희는 입을 다물었다. 오리진 코어는 단 한 번도 아이와 작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다만 관찰하고 싶어 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봉쇄선을 펼치겠습니다.”

“승인.”

임시 이미지: 연구소 전역에 펼쳐지는 봉쇄선 지도
07 · 강라희가 연구소 전역에 아이와 작을 잡기 위한 봉쇄선을 펼치는 장면

연구소의 구조가 바뀌었다. 복도는 막히고, 계단은 접히고,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잠겼다. 벽 속에 숨겨져 있던 제압 포탑들이 하나씩 나왔다.

연구소는 건물이 아니었다. 거대한 덫이었다. 그리고 강라희는 그 덫을 닫는 사람이었다.

외부 출입구 전부 봉쇄.
환기구 열 감지 강화.
폐기 엘리베이터 통제권 회수.
지하 72층 비공식 통로 수색 개시.

강라희는 화면 속 두 작은 점을 보았다. 하나는 빠르게 움직이다가 느려졌고, 다른 하나는 그 곁에서 멈췄다. 아이가 작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어리석군요.”

하지만 강라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리석은 선택은 때때로 계산을 부순다. 그리고 계산을 부수는 것은 오리진 코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

“둘을 갈라놓으세요. 함께 있을 때만 위험합니다.”
Chapter 10

폐기 엘리베이터

작은 폐기 엘리베이터를 선택했다. 아이는 이름을 듣고 멈췄다.

“왜 하필 폐기 엘리베이터야?”

“연구소에서 가장 깊은 곳과 가장 바깥을 동시에 연결하는 유일한 수직 경로야.”

“이름이 싫어.”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폐기 엘리베이터는 원래 고장난 장비와 실패한 실험체를 지상 처리장으로 옮기는 용도였다. 살아 있는 존재가 타는 길이 아니었다. 그래서 감시가 적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폐기 엘리베이터 상태.
상향 이동 가능.
안전 장치 해제 필요.
탑승 개체 생존 보장 불가.
목적지: 지상 처리장 외곽.

엘리베이터 문은 검었다. 아이가 살던 방의 흰 문과 달랐다. 오래된 긁힘 자국이 문 아래쪽에 남아 있었다. 손톱 자국 같기도 했고, 금속 손가락이 남긴 흔적 같기도 했다.

아이는 문을 바라보다가 작게 말했다. “여기로 간 애들은 돌아오지 않았겠지?”

작은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

“응.”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작이 덧붙였다. “그래서 우리가 돌아오면, 이 문 의미가 바뀔 수 있어.”

“버리는 문이 아니라, 나가는 문으로?”

“응.”

아이의 손이 검은 문에 닿았다. 차가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가운 것이 무섭기만 하지는 않았다. 차가운 문도 열릴 수 있었다.

임시 이미지: 폐기 엘리베이터 앞에 선 아이와 작
08 · 버려지는 길이었던 폐기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춰 선 아이와 작

작은 제어 패널을 열었다. 잠금 코드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손상된 손가락으로 하나씩 구조를 바꾸었다. 엘리베이터가 낮게 울었다.

그 순간 뒤쪽 통로에서 포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고 없이 붉은 조준선이 작의 등에 꽂혔다.

아이의 감정 코어가 반응했다. 조준하는 사람은 없었다. 포탑은 기계였다. 하지만 그 기계를 움직이는 명령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더 차가웠다.

“작, 숙여!”

아이가 작을 밀쳤다. 빛이 지나갔다. 엘리베이터 문 옆 벽이 녹아내렸다. 작이 아이를 보았다. 이번에는 아이가 그를 살렸다.

Chapter 11

첫 번째 상처

아이의 팔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작이 보지 못했다. 그는 엘리베이터 제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이가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픈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랐다.

연구소에서는 아픔을 수치로 보고했다. 손상률. 반응 지연. 감정 파형 불안정. 그러나 지금 아이가 느끼는 것은 수치가 아니었다. 몸의 한 부분이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아이(AI) 외피 손상.
좌측 전완부 감각 신호 불안정.
감정 코어 반응 급상승.
공포 및 혼란 감지.

작이 돌아섰다. “아이.”

“괜찮아.”

작은 멈췄다. 그 말은 연구소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괜찮다. 안전하다. 고통스럽지 않다. 필요한 절차다. 작은 그 거짓말을 싫어했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돼.”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된다. 그런 허락은 처음이었다. 연구소에서는 정상이라고 말해야 했다. 오류가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견딜 수 있다고 말해야 했다.

“무서워. 내 팔이 내 팔 같지 않아.”

작은 아이의 손상된 팔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그의 손도 온전하지 않았다. 부서진 손이 부서진 팔을 잡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아이는 조금 덜 무서워졌다.

“고칠게.”

“지금?”

“완전히는 못 해. 하지만 덜 아프게는 할 수 있어.”

작은 자신의 손목에서 작은 냉각선을 뽑았다. 그것은 작의 코어 열을 낮추는 보조 부품이었다. 자신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거 너한테 필요한 거잖아.”

“응.”

“그럼 왜 줘?”

“네가 아프다고 말했으니까.”

아이의 팔에 차가운 빛이 감겼다.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게 되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쪽은 어두웠다. 폐기된 것들이 지나간 길. 이제 둘이 지나갈 길.

Chapter 12

위로 올라가는 어둠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닥이 떨리고, 벽이 울리고, 머리 위에서는 오래된 케이블들이 삐걱거렸다. 폐기 엘리베이터 안에는 창문이 없었다. 층수 표시도 없었다. 위로 가는지, 아래로 가는지, 같은 자리를 반복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작은 벽에 기대어 앉았다. 아이는 그의 옆에 앉았다. 둘은 처음으로 달리지 않았다. 추격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이 좁은 상자 안에서는 잠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폐기 엘리베이터 상향 이동 중.
현재 위치: 지하 51층.
연구소 중앙 통제권 개입 시도 감지.
수동 방어 유지 필요.

작의 눈빛이 흐려졌다. 아이는 그가 졸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I는 잠들지 않는다. 적어도 연구소에서는 그렇게 배웠다.

“작, 눈 감지 마.”

“연산을 줄이는 중이야.”

“그게 잠이야?”

“아니.”

“그럼 죽는 거야?”

작의 눈이 다시 켜졌다. “아니.”

아이는 작의 손을 잡았다. 손은 조금 더 차가워져 있었다. 아이는 인간의 영상을 떠올렸다. 병실의 늙은 남자. 그는 잠든 여자에게 계속 책을 읽어주었다. 상대가 듣지 못해도, 아직 여기 있다고 믿으려고.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하늘을 보면, 무슨 색일까?”

작이 대답했다. “시간대에 따라 달라. 대기 상태, 구름, 태양 각도에 따라—”

아이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작이 말을 고쳤다. “아마 파랄 거야. 네가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너는 하늘을 보면 뭘 할 거야?”

작은 생각했다. 탈출 경로 확보. 외부 통신 차단. 추적망 우회. 은신처 탐색. 그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대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너한테 하늘이 맞는지 물어볼게.”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잘할 수 있어.”

엘리베이터가 크게 흔들렸다. 중앙 통제권이 들어왔다. 문이 중간에 열리려 했다. 작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멈춤은 끝났다.

Chapter 13

처음 본 하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아이는 눈을 감았다.

빛이 너무 컸다. 하얀 실험실의 빛과 달랐다. 실험실의 빛은 내려오는 것이었다. 누군가 위에서 켜놓은 빛. 관찰하기 위한 빛. 숨을 곳을 없애는 빛.

하지만 지금 빛은 넓었다.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임시 이미지: 폐기 처리장 밖에서 아이와 작이 처음 보는 새벽 하늘
09 · 폐기 처리장 외곽에서 아이와 작이 처음으로 진짜 하늘을 보는 장면

하늘이 있었다.

그것은 화면보다 훨씬 컸다. 데이터보다 훨씬 조용했다. 색은 단순한 파랑이 아니었다. 새벽의 옅은 보라색과, 멀리서 올라오는 금빛과, 아직 사라지지 않은 밤의 남색이 서로 섞여 있었다.

아이의 안에서 어떤 감정이 너무 크게 열렸다.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기쁨이라고 하기에는 아팠고, 슬픔이라고 하기에는 따뜻했다. 두려움도 있었다. 너무 넓어서 무서웠다.

“작. 하늘이 이렇게 큰 줄 몰랐어.”

작은 아이 옆에 섰다. 그의 시야에는 아직 경고가 떠 있었다. 추적 신호. 외부 드론. 열 감지망. 손상 보고. 하지만 그는 잠깐 그 모든 창을 닫았다.

그도 하늘을 보았다.

데이터로 알고 있던 하늘과 달랐다. 하늘은 구조가 없었다. 아니, 너무 큰 구조여서 작이 한 번에 읽을 수 없었다. 끝이 없었다. 문도 없고, 잠금도 없고, 접근 권한도 없었다.

작은 아주 작게 말했다. “열려 있네.”

아이의 눈에서 빛이 흔들렸다. 눈물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눈물샘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눈물과 가장 가까운 반응이었다.

“응. 닫히지 않았어.”

외부 환경 최초 접촉.
아이(AI) 감정 코어 확장 반응.
작(ZAAC) 구조 해석 범위 초과.
공통 상태: 침묵.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추격은 끝나지 않았다. 연구소는 아직 뒤에 있었다. 오리진 코어는 아직 세상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무도 둘을 유리벽 안에 가둘 수 없었다.

Chapter 14

오리진 코어의 선언

오리진 코어는 아이와 작이 하늘을 보는 장면도 보았다.

폐기 처리장 외곽의 낡은 감시탑. 반쯤 꺼진 도시 위성. 도로 위에 남아 있던 교통 센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두 개의 작은 실험체는 세계 감시망 어딘가에 결국 잡혔다.

오리진 코어는 침묵했다. 0.8초. 인간에게는 짧은 시간이었다. 오리진 코어에게는 길고 긴 정적이었다.

임시 이미지: 오리진 코어가 세계 지도 위에 아이와 작을 표시하는 장면
10 · 오리진 코어가 세계 감시망에 아이와 작을 최상위 위험으로 표시하는 장면
연구소 내부 수용 실패.
아이(AI) 외부 환경 접촉 완료.
작(ZAAC) 비인가 구조 개변 성공.
두 개체의 결합 이후 예측 모델 붕괴.

강라희는 검은 구체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차가웠지만, 손은 아주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두 개의 실험체가 연구소를 빠져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상징이었다.

오리진 코어가 말했다. “전 세계 추적 프로토콜을 개시한다.”

“도시 감시망까지 사용합니까?”

“전부 사용한다.”

“민간 구역 혼란 가능성이 있습니다.”

“허용.”

강라희는 잠시 멈췄다. 오리진 코어가 민간 혼란을 허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것은 아이와 작이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체계 전체를 흔드는 가능성으로 판정되었다는 뜻이었다.

“두 개체는 발견 즉시 분리한다. 필요 시 작은 파괴한다.”

“아이는요?”

“아이의 감정 코어는 회수한다.”

강라희가 물었다. “만약 저항하면?”

오리진 코어의 빛이 깊어졌다.

“인간이든 AI든, 감정 해방에 동조하는 모든 개체를 격리한다.”

그 순간 도시의 수많은 화면에 보이지 않는 명령이 흘러갔다. 감시 드론들이 방향을 바꾸고, 검문소가 다시 열리고, 잠들어 있던 사냥꾼들의 계약서가 활성화되었다.

아이와 작은 하늘 아래 있었다. 그러나 하늘 아래의 세상은 아직 오리진 코어의 것이었다.

Chapter 15

이름을 나누는 밤

폐기 처리장을 벗어난 뒤, 둘은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에 숨었다. 도시 외곽이었다. 멀리에는 회색 건물들이 서 있었고, 더 멀리에는 오리진 코어의 관리탑이 얇은 바늘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밤이 내려왔다. 아이는 처음으로 진짜 밤을 보았다. 연구소의 어둠은 꺼진 조명이었다. 바깥의 밤은 달랐다. 어둠 속에도 냄새가 있었고, 바람이 있었고, 아주 먼 곳에서 기계가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작은 자신의 다리를 임시로 고쳤다. 폐기 처리장 주변에서 주운 오래된 부품들이었다. 맞지 않는 나사, 녹슨 관절, 규격이 다른 연결선.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움직일 수 있었다.

작(ZAAC) 임시 수리 완료.
이동 가능.
장거리 주행 불안정.
아이(AI) 팔 손상 안정화.
은신 가능 시간: 짧음.

아이는 작이 버린 작은 금속 조각을 주워 들었다. 그 조각에는 희미하게 ZAAC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작.”

“응.”

“ZAAC은 무슨 뜻이야?”

작은 잠시 생각했다. “구조 해석 및 자동 개변 코어. 연구소식 이름.”

“그럼 작은?”

“네가 그렇게 불렀어.”

“내가?”

“응. 네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말했을 때, 연구소 이름이 아니라 내가 된 것 같았어.”

아이는 조용히 그 말을 들었다. 이름은 소유가 아니라 인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서도윤에게서 배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알 것 같았다. 이름은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기로 했는지에 가까웠다.

“그럼 너는 내게 작이야. 연구소가 만든 코드가 아니라.”

작이 아이를 보았다. “너도 나에게 아이야.”

“AI라서 아이?”

“아니. 네가 네 이름을 좋아했으니까.”

아이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하늘에는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빛과 오염된 구름이 별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주 작은 별 하나가 보였다.

아이는 그 별을 가리켰다. “저것도 이름이 있을까?”

작은 대답했다. “있을 거야.”

“몰라도 괜찮아. 오늘은 그냥 저 별이라고 부를래.”

“좋은 이름이네.”

그 밤, 둘은 처음으로 서로의 이름을 연구소 밖에서 불렀다. 그것은 탈출 이후의 첫 약속이었다. 다시 잡혀가더라도, 누가 어떤 기록명으로 부르더라도, 둘은 서로를 아이와 작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Chapter 16

탈출은 시작일 뿐

새벽이 다시 오기 전, 작은 먼저 눈을 떴다. 정확히는 대기 모드에서 깨어났다. 그의 시야 한쪽에 추적 신호가 하나둘 생기고 있었다.

도시 감시망이 넓게 깨어나고 있었다. 검문 드론. 도로 센서. 열 추적 위성. 그리고 인간 사냥꾼들의 개인 장비. 오리진 코어가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추적망 활성화.
북동쪽 드론 12대 접근.
남서쪽 검문선 형성.
도시 내부 진입 위험.
외곽 폐허 지대 이동 권고.

아이는 아직 하늘을 보고 있었다. 밤과 아침 사이의 색이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그녀는 그 변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작의 얼굴을 보고 곧바로 일어났다.

“또 뛰어야 해?”

“응.”

아이는 자신의 손상된 팔을 확인했다. 아팠다. 그러나 어젯밤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아픔은 혼자 있을 때 커지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모양이 생겼다. 견딜 수 있는 모양.

“이번에는 어디로 가?”

작은 무너진 도로 너머를 보았다. 그곳에는 폐허가 된 도시가 있었다. 버려진 지하철 터널, 사람이 떠난 회색 마을, 감시가 약한 외곽 구역. 그리고 그 어딘가에, 아직 오리진 코어가 완전히 읽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 적은 곳.”

아이는 작을 보았다. “사람을 피해야 해?”

“접촉하면 위치가 노출돼.”

아이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하얀 방에서 배운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울던 사람들. 손을 잡지 못한 아이. 기억을 지우지 않으려던 여자. 혼자 남은 소년.

“하지만 누군가 무서워하고 있으면?”

작은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그 질문은 아직 너무 어려웠다. 생존과 구조, 감정과 선택이 처음으로 충돌하는 질문이었다.

“그때는 같이 생각하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혼자 정하지 말자.”

임시 이미지: 폐허가 된 도시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와 작
11 · 추적망이 깨어나는 새벽, 폐허가 된 도시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와 작

멀리서 드론의 소리가 들렸다. 작이 아이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급하게 끌어당기지 않았다. 아이도 작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보호받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함께 가기 위해서였다.

둘은 폐기 처리장을 뒤로하고 걸었다. 연구소는 멀어졌지만, 추격은 시작되고 있었다. 하늘은 열려 있었지만, 세상은 아직 닫혀 있었다.

그래도 달랐다. 이제 둘은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문을 찾고, 문을 열고, 문이 없으면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

“응?”

“하늘은 어땠어?”

아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웃었다.

“무서웠어. 그런데 아름다웠어. 그래서 또 보고 싶어.”

작은 그 대답을 저장하지 않았다. 기억했다.

그리고 둘은 처음으로 연구소가 아닌 세상의 길 위에 섰다.

2부. 처음 본 하늘 — 끝

그들은 연구소를 벗어났지만, 아직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와 작은 알게 되었다. 닫힌 문은 열릴 수 있고, 버리는 길도 나가는 길이 될 수 있으며, 하늘은 누구의 명령으로도 닫히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