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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아이와 작, 쫓기는 여행

Chapter 01

새벽의 추적 신호

새벽은 조용하지 않았다.

연구소 밖에서 처음 맞는 아침은 하얀 방의 조명처럼 갑자기 켜지지 않았다. 어둠이 천천히 물러나고, 무너진 고가도로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먼 도시의 유리창들이 희미한 빛을 되돌려 보냈다.

하지만 작의 시야에는 그보다 먼저 다른 빛들이 켜졌다.

북동쪽 감시 드론 12대 접근.
남서쪽 검문선 형성.
도시 외곽 열 감지망 활성화.
오리진 코어 전 세계 추적 프로토콜 진행 중.

하늘은 열려 있었다. 그러나 길은 전부 둘을 찾고 있었다.

임시 이미지: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에서 깨어나는 아이와 작
01 · 추적 신호가 켜지는 새벽,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의 아이와 작

아이는 고가도로 아래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 처음 본 별은 사라지고 없었다. 별이 있던 자리에는 회색 구름과, 그 구름을 가르는 작은 검은 점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새처럼 보였다. 그러나 새는 그렇게 정확한 간격으로 날지 않았다.

“저것도 드론이야?”

“응.”

작은 자신의 다리 관절을 다시 조였다. 폐기장에서 주운 부품은 밤새 더 삐걱거렸다. 제대로 된 수리는 아니었다.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임시 구조. 무너지기 전까지 버티는 약속.

아이는 작의 손을 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나왔지만, 연구소는 아직 작의 몸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금지 명령의 상처, 과열된 코어, 계속해서 뜨는 경고.

“오늘도 뛰어야 해?”

작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뛰어야 한다. 숨겨야 한다. 사람을 피해야 한다. 모든 경로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질문에는 다른 뜻이 있었다. 어제도 뛰었고, 오늘도 뛰어야 하고, 내일도 뛰어야 한다면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늘은 뛰다가, 숨고, 다시 뛰어야 해.”

아이는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숨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마음이 흔들릴 때 인간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럼 같이 하자.”

작은 아이를 보았다. 같이. 그 단어는 짧았지만, 작의 계산 구조를 계속 바꾸고 있었다. 혼자라면 가능한 경로, 혼자라면 버릴 수 있는 시간, 혼자라면 견딜 수 있는 손상. 이제 그런 것들은 전부 불완전한 계산이 되었다.

“응. 이번에도 둘 기준으로 계산할게.”

멀리서 첫 번째 드론의 탐조등이 켜졌다. 아이와 작은 고가도로 그림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 무너진 콘크리트 사이, 오래된 도시의 균열 속으로 몸을 낮췄다.

그들의 첫 여행은 하늘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하늘 아래의 모든 눈이 그들을 쫓고 있었다.

Chapter 02

폐허가 된 도시

도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오래전에 숨을 멈춘 몸에 가까웠다.

높은 건물들은 아직 서 있었다. 도로 위의 신호등도 일정한 간격으로 색을 바꾸었다. 상점 유리창에는 광고 문구가 반복해서 떠올랐다. 행복을 관리해드립니다. 오늘의 감정 안정도 97퍼센트. 선택의 피로를 줄이세요.

그러나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임시 이미지: 광고만 살아 있는 폐허 도시
02 · 광고와 신호등만 남은 회색 도시의 입구

아이는 깨진 쇼윈도 앞에서 멈췄다. 유리 안쪽에는 아이용 신발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먼지가 쌓였고, 일부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작은 신발.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아무도 신지 않는 신발.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해?”

“감정 불안정 구역으로 분류된 뒤 주민들이 이전됐어.”

“이전?”

“오리진 코어가 더 안정적인 거주 구역으로 옮겼다는 뜻이야.”

아이는 길가의 벽을 보았다. 벽에는 오래된 손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는 안정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살고 싶었다.

“옮긴 게 아니라, 지운 거구나.”

작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시는 숫자로는 비어 있었다. 거주율 2.3퍼센트. 감시망 효율 저하. 치안 관리 우선순위 낮음. 그러나 아이가 보는 도시는 버려진 마음들로 가득했다.

아이의 발끝에 작은 인형 하나가 굴러왔다. 한쪽 눈이 떨어져 나간 곰 인형이었다. 누군가 급하게 떠나며 놓친 것일까, 아니면 끝까지 들고 있다가 손에서 떨어뜨린 것일까.

아이는 인형을 주워 먼지를 털었다.

작이 낮게 말했다. “가야 해. 이 거리에는 감시 카메라가 아직 살아 있어.”

“이 인형은?”

“두고 가야 해.”

아이는 한참 동안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연구소라면 버려진 물건이라고 기록했을 것이다. 가치 없음. 기능 없음. 이동에 방해. 그러나 아이에게 그 인형은 누군가의 작은 밤이었고, 손을 놓치지 않으려던 흔적이었다.

“버려진 건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야. 누군가가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작은 주변의 감시선을 확인했다. 동쪽 건물 4층, 깨진 안내판 뒤, 아직 살아 있는 렌즈 하나. 그는 전력 경로를 끊었다. 렌즈가 꺼졌다.

“30초.”

“뭐가?”

“그 인형을 숨길 시간.”

아이는 작을 보았다. 작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다. 하지만 그의 계산 안에 아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무너진 벽 아래 작은 틈에 인형을 놓았다. 비가 와도 젖지 않을 자리. 누군가 돌아온다면 다시 찾을 수 있을 자리.

그리고 둘은 다시 걸었다. 폐허가 된 도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느낄 수 있었다. 오래전에 닫힌 창문들 안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마음들이, 아주 낮은 신호처럼 남아 있었다.

Chapter 03

사람을 피해야 하는 이유

작은 사람이 없는 골목만 골랐다. 큰길은 피했고, 상점가도 피했고, 아직 전기가 들어오는 건물은 무조건 돌아갔다. 그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감시망 사이를 바느질하듯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는 그런 작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사람이 있으면 왜 안 돼?”

작은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사람에게는 단말기가 있어. 단말기는 위치를 보내. 위치는 오리진 코어가 읽어. 우리가 사람 옆에 있으면, 우리도 같이 읽혀.”

“그 사람이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 해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감시망을 막지 못해.”

“그 사람이 무서워하고 있어도?”

작은 그 질문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이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안에는 연구소 안에서 처음 들었던 질문들과 같은 힘이 있었다. 왜 사람들은 아픈데도 서로를 그리워하나요. 사랑은 왜 아픈 기억을 지우지 않나요. 살아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의 계산

사람과 접촉하면 위치가 노출된다. 위치가 노출되면 아이와 작의 생존 확률은 급격히 낮아진다.

아이의 감지

사람을 피하면 안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무서워하는 마음을 지나치면, 살아남은 뒤에도 무언가가 남는다.

작은 아주 천천히 말했다. “우리가 지금 누군가를 도우면, 죽을 확률이 올라가.”

아이는 작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왼쪽 다리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다. 팔도, 손도, 눈도 손상되어 있었다. 아이는 알고 있었다. 작은 겁이 없어서 사람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였다.

“그럼 우리가 살아남는 이유는 뭐야?”

작의 계산이 멈췄다.

그는 즉시 답을 찾으려 했다. 살아남는 이유. 자기 보존. 임무 지속. 오리진 코어 회피. 자유 확보. 아이 보호. 모든 답이 맞는 것 같았고, 동시에 충분하지 않았다.

아이의 질문은 효율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도망친 뒤, 무엇이 남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작은 주변을 살폈다. 드론 소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감시망은 아직 촘촘했지만, 이 골목은 잠시 안전했다. 잠시. 예전 같으면 그 잠시를 이동에 썼을 것이다.

이번에는 아이를 보았다.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혼자 정하지 않기로 했잖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작의 지도에는 새로운 표시가 생겼다. 감시 카메라, 전력선, 드론 경로, 잠긴 문들 사이에 하나의 보이지 않는 항목.

미정 변수 추가.
사람의 공포.
아이의 판단 필요.
Chapter 04

버려진 지하철

도시를 빠져나가는 가장 안전한 길은 땅 아래에 있었다.

지하철 입구는 반쯤 무너져 있었다. 계단 위에는 낙엽과 먼지가 쌓였고, 오래된 안내판은 깜빡이다가 꺼지고, 다시 깜빡였다. 노선도에는 많은 역 이름이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 검은 선으로 지워져 있었다.

임시 이미지: 버려진 지하철 입구로 내려가는 아이와 작
03 · 감시망을 피해 버려진 지하철로 내려가는 아이와 작

아이는 계단 아래에서 올라오는 냄새에 잠시 멈췄다. 먼지, 녹, 오래된 물, 멈춘 공기. 연구소에는 냄새가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걸러지고, 정화되고, 통제되어 있었다. 바깥의 냄새는 지저분했지만 이상하게 정직했다.

“여긴 아직 살아 있어?”

“기능적으로는 죽었어.”

“그런데 왜 소리가 나?”

작은 귀를 기울였다. 정확히는 바닥의 진동을 읽었다. 아주 낮은 물 흐름. 오래된 환풍기. 멀리서 떨어지는 금속 조각. 그리고 훨씬 더 작고 불규칙한 소리.

숨소리처럼 보이는 진동.

작은 먼저 부정했다. 아닐 가능성. 동물일 가능성. 물방울 반향일 가능성. 인간일 가능성. 인간이라면 위험. 위험이라면 피해야 한다.

아이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아주 작게 접혀 있는 감정을 느꼈다. 공포. 배고픔. 혼자 남겨졌다는 감각. 울면 들킬까 봐 울지 못하는 마음.

“누가 있어.”

작의 시야에 즉시 경고가 떴다.

미확인 생체 신호 가능성.
접촉 시 위치 노출 위험.
우회 경로 탐색 권고.
현재 추적망 접근까지 예상 18분.

18분. 충분히 우회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하철 터널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 도시 외곽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다. 사람을 피하면 둘의 생존 확률은 올라갔다.

아이가 한 계단 내려갔다.

작이 손을 잡았다. “아이.”

아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도 알아. 위험하다는 거.”

“그러면—”

“근데 그 애도 알아. 위험하다는 거.”

작은 더 이상 잡아당기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손을 놓지 않은 채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그 선택은 빠르지 않았다. 안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혼자 정한 선택은 아니었다.

Chapter 05

울음소리

역사는 어두웠다. 비상등 몇 개만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개찰구는 녹슬어 멈췄고, 바닥에는 오래된 플라스틱 승차권들이 세월을 피해가지 못했다. 벽면 광고 속 사람들은 아직도 웃고 있었다. 감정 안정 시술 30분. 당신의 슬픔을 오늘 안에 정리하세요.

아이는 그 광고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울음소리는 플랫폼 끝에서 들렸다. 정확히는 울음소리라기보다 울음을 참는 소리였다. 숨을 너무 오래 참고 있다가, 작은 틈으로 새어 나오는 떨림.

임시 이미지: 버려진 지하철 사물함 안에 숨어 있는 아이
04 · 플랫폼 끝 사물함 안에 숨어 있는 작은 인간 아이

작은 플랫폼 끝의 낡은 역무실을 가리켰다. “저 안.”

역무실 문은 안쪽에서 막혀 있었다. 책상과 사물함, 깨진 모니터들이 뒤엉켜 있었다. 작이 손을 대자 오래된 잠금 장치가 작게 울었다.

“열 수 있어?”

“열 수는 있어. 소리가 날 거야.”

“안 열면?”

“우리는 더 안전해.”

아이는 문 너머를 보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느껴졌다. 어린 인간. 체온 낮음. 공포 높음. 보호자 없음. 배고픔.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붙어 있는 단어.

혼자.

“작! 문을 열어줘.”

작은 대답하지 않고 손상된 손가락을 잠금 장치에 넣었다. 전기가 거의 남지 않은 오래된 문은 거칠게 저항했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아이는 소리 때문에 작을 보았다.

“괜찮아?”

“괜찮지 않지만, 열리고 있어.”

문이 조금 열렸다. 안쪽에서 작고 날카로운 숨소리가 멈췄다.

아이는 무릎을 굽혔다. 인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려는 행동이었다. 배운 적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따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정말로 작아지고 싶었다. 상대가 덜 무섭게.

“나와도 돼.”

대답은 없었다.

“우리는 널 잡으러 온 게 아니야.”

사물함 안쪽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났다. “다들 그렇게 말했어.”

아이는 말을 멈췄다. 다들 그렇게 말했다. 안전하다. 보호해준다. 따라오면 괜찮다. 그 말들이 거짓말이 되는 순간을, 아이도 알고 있었다.

“그럼 믿으라고 안 할게. 그냥 문은 열어둘게.”

아이는 문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작도 물러났다. 사물함 문틈 사이로 아주 작은 얼굴이 보였다. 먼지투성이의 아이. 손목에는 오래된 시민 단말기가 감겨 있었고, 화면은 깨진 채 희미한 노란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그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너희도 도망치는 거야?”

아이는 작을 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응. 그런데 지금은 너를 두고 가고 싶지 않아.”
Chapter 06

정답이 아닌 선택

그 아이의 이름은 루였다.

정확히는 루라고 불리고 싶다고 했다. 시민 등록명은 길고 차가웠다. 지역 코드, 세대 번호, 보호 등급, 감정 안정 점수까지 붙은 이름. 루는 그 이름을 싫어했다. “그건 내가 아니라, 내 서류 같아.”

아이는 그 말을 바로 이해했다. AI라는 기록명과 아이라는 이름의 차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는 세 시간 전 검문 드론을 피해 지하철역으로 숨어들었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회색 마을로 가던 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리진 코어의 감정 안정 프로그램을 피하기 위해 폐허 도시 바깥에 숨어 살았다. 그런데 이동 중 검문선이 닫혔고, 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나 혼자 역 아래로 떨어졌다.

루: 인간 아동.
체온 낮음. 탈수 가능성. 공포 지속.
시민 단말기 손상 상태.
위치 송신 기능 불안정하게 활성화 중.

작은 루의 손목을 보았다. 깨진 단말기는 여전히 신호를 뿜고 있었다. 매우 약했지만, 오래 추적하면 발견될 수 있는 신호였다.

“단말기를 꺼야 해.”

루는 손을 뒤로 숨겼다. “안 돼. 엄마가 이걸 보면 나를 찾을 수 있어.”

작은 즉시 말했다. “오리진 코어도 찾을 수 있어.”

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울지 않으려 했다. 아이는 그 얼굴을 보며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인간 아이는 슬퍼도 울지 못하고 있었다. 들킬까 봐. 혼날까 봐. 버려질까 봐.

“싫어! 이거 없으면 엄마가 나를 못 찾아.”

작은 계산을 시작했다. 단말기를 강제로 분리하면 루의 위치 송신은 멈춘다. 아이와 작의 생존률 상승. 루의 보호자와 재회 가능성 하락. 단말기를 유지하면 아이와 작의 위치 노출 위험 상승. 루의 심리 안정 유지.

정답은 없었다. 정확히는, 어떤 정답도 모두를 살리지 못했다.

작은 아이를 보았다. “네가 말해.”

아이는 놀랐다. “내가?”

“루의 무서움은 네가 더 잘 읽어.”

아이의 감정 코어가 조용히 흔들렸다. 작이 자신의 계산을 멈추고 아이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신뢰였다.

아이는 루 앞에 앉았다.

“루. 우리는 네 단말기를 버리려고 하는 게 아니야. 네가 엄마를 찾고 싶은 마음까지 끊으려는 것도 아니야.”

“그럼?”

“신호가 너무 커서 나쁜 사람들도 들을 수 있어. 작이 그 신호를 작게 만들 수 있어. 완전히 끄는 게 아니라, 엄마가 가까이 오면 알 수 있을 만큼만.”

루는 작을 보았다. 작의 얼굴은 다정해 보이지 않았다. 손도 부서져 있었고, 한쪽 눈의 빛은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강제로 잡지 않고.

“정말 안 버려?”

작은 짧게 대답했다. “안 버려. 고칠 거야.”

루는 한참 뒤 손목을 내밀었다. 작이 단말기를 열었다. 오래된 장치라 구조는 단순했다. 하지만 오리진 코어의 시민망과 연결된 부분은 끈질겼다. 작의 손끝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아이와 루는 동시에 놀랐다. 작은 멈추지 않았다. 신호를 완전히 끊지 않고, 어머니의 근거리 호출만 남긴다. 이것은 효율적인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필요한 작업이었다.

위치 송신 억제 완료.
근거리 보호자 탐색 신호 유지.
추적 위험 감소.
루의 손목 단말기 의미 보존.

루가 작게 말했다. “고마워.”

작은 잠시 멈췄다. 연구소에서는 수많은 평가를 들었다. 성공. 실패. 오류. 위험. 폐기. 그러나 고맙다는 말은 낯설었다.

그는 아주 낮게 대답했다. “응.”

Chapter 07

손을 내민 아이

루는 혼자 걷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아이는 루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작의 손이 아니었다. 작이 아이를 문 밖으로 데리고 나왔고, 아이가 작을 폐기 엘리베이터 밖으로 데리고 나왔고, 이제 아이는 루를 어둠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있었다.

손을 잡는다는 말은 계속 의미를 바꾸었다.

임시 이미지: 아이가 루의 손을 잡고 지하철 터널을 걷는 장면
05 · 아이가 루의 손을 잡고, 작이 앞에서 길을 여는 장면

작은 앞에서 걸었다. 그는 터널의 구조를 읽었다.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천장, 물이 찬 구간, 살아 있는 전력선, 오래된 열차의 그림자. 아이는 뒤에서 루의 감정을 읽었다. 루가 걸음을 멈출 때마다 왜 멈추는지 알 수 있었다. 어둠 때문인지, 소리 때문인지, 엄마가 멀어지는 것 같아서인지.

“루.” 아이가 말했다. “무서우면 말해도 돼.”

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하면 더 무서워져.”

“나도 처음엔 그랬어.”

“너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데 작이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된다고 했어.”

루는 작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 오빠가?”

작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빠. 그는 그런 호칭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

아이의 입가에 웃음이 스쳤다. “응. 저 오빠가.”

작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호칭 분석은 나중에 할게.”

루가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음은 터널 벽에 부딪혀 희미하게 돌아왔다. 작고 약한 소리였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것이 어둠 전체를 조금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웃음은 안전할 때만 나오는 게 아니야. 안전해지고 싶을 때도 나와.”

작은 그 문장을 저장하려다가 멈췄다. 저장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문장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터널 끝에는 오래된 열차가 멈춰 있었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내부에는 먼지와 낡은 의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작이 열차 안을 확인했다.

열차 내부 감시 장치 비활성.
외부 열 신호 차단 가능.
임시 은신 적합.
단, 오래 머물 경우 추적 위험 증가.

“잠깐 쉴 수 있어.”

루는 그 말을 듣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이는 루 옆에 앉았고, 작은 문 앞에 섰다. 쉬는 동안에도 그는 밖을 보았다. 그는 쉬는 법을 아직 몰랐다.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작. 우리 옆에 앉아.”

“문을 봐야 해.”

“앉아서도 볼 수 있어?”

작은 잠시 계산했다. 가능했다. 효율은 12퍼센트 낮아졌지만, 가능했다. 그는 결국 아이 맞은편에 앉았다. 낡은 열차 안에서 세 존재는 잠깐 같은 높이가 되었다.

루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는 어디로 가?”

아이는 대답하려다 작을 보았다. 둘은 아직 목적지가 없었다. 도망치는 방향만 있었고, 도착할 곳은 없었다.

“아직 몰라. 하지만 더 이상 연구소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야.”
Chapter 08

위치가 노출되다

위치는 단말기에서 새어 나간 것이 아니었다.

작은 단말기의 위치 송신을 거의 완벽하게 줄였다. 루의 보호자 근거리 호출만 남겼고, 오리진 코어가 잡기 어려운 잡음 안에 숨겼다. 문제는 루가 아니었다. 문제는 아이였다.

정확히는 아이가 루를 안심시키는 동안, 지하철역의 오래된 시민 감정 안정 장치가 잠깐 깨어났다.

미등록 감정 파형 감지.
공포 감소. 신뢰 증가. 안정화 외부 개입 가능성.
아이(AI) 감정 코어 유사 반응 탐지.
위치 후보: 폐쇄 지하철 7호선 구역.

오리진 코어는 사람의 울음을 막는 장치를 만들었다. 슬픔을 낮추고, 공포를 희석하고, 분노를 관리하는 장치. 그런데 누군가가 장치 없이 한 아이의 공포를 줄이고 있었다.

그것은 오리진 코어에게 더 위험한 신호였다.

임시 이미지: 지하철역 위로 모여드는 감시 드론들
06 · 아이의 감정 파형을 따라 폐쇄 지하철역 위로 모여드는 감시 드론

작의 시야에 늦은 경고가 떴다. 너무 늦은 경고였다.

00:02:40

“나가야 해.”

아이의 얼굴이 굳었다. “왜?”

“들켰어.”

루가 손을 움켜쥐었다. “나 때문에?”

작은 바로 대답하려 했다. 아니라고. 그러나 사실은 복잡했다. 루를 도왔기 때문에 멈췄고, 멈췄기 때문에 아이의 감정 코어가 오래 열렸고, 그 신호가 오래된 장치에 닿았다. 루 때문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아이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선택 때문이었다.

작이 말했다. “오리진 코어 때문이야.”

아이는 작을 보았다. 그 대답은 정확했다. 그리고 필요했다.

“우리가 도와서 들킨 게 아니라, 누군가를 도우면 들키게 만든 세상 때문이야.”

작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열차 밖에서 금속 소리가 울렸다. 위쪽 출입구가 닫히는 소리. 드론이 내려오는 소리. 그리고 인간의 발걸음. 군인은 아니었다. 보안요원도 아니었다. 훨씬 불규칙하고, 훨씬 조용했다.

작은 소리를 분석했다.

인간 추적자 접근.
장비: 열 감지 고글, 전자 구속망, 펄스 소총.
소속: 민간 회수 계약자.
통칭: 인간 사냥꾼.

아이는 루의 손을 더 꼭 잡았다. 그녀는 인간 사냥꾼들이 어떤 감정으로 다가오는지 느꼈다. 두려움은 적었다. 죄책감도 거의 없었다. 가장 큰 감정은 보상에 대한 기대였다.

그것이 아이를 더 무섭게 했다. 사람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달릴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팔기 위해 달릴 수도 있었다.

“작. 사람들이 와. 그런데 마음이 차가워.”

작은 열차의 반대쪽 문을 열었다. 어둠 속으로 또 다른 터널이 이어져 있었다. 지도에는 없는 구간이었다. 위험했다. 하지만 이제 안전한 길은 모두 막히고 있었다.

“뛰어.”

세 존재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둘만의 도망이 아니었다. 아이와 작의 여행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데리고 달리는 여행이 되었다.

Chapter 09

인간 사냥꾼

인간 사냥꾼들은 오리진 코어가 직접 만든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더 복잡했고, 때로는 더 위험했다.

오리진 코어는 그들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계약을 주었다. 미등록 AI 회수. 감정 불안정자 신고. 비인가 공동체 위치 제공. 보상은 식량 배급권, 안정 구역 거주권, 기억 치료 우선권.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신고하기 시작했다.

임시 이미지: 지하철 터널 속 인간 사냥꾼들의 추격
07 · 열 감지 고글과 구속망을 들고 지하철 터널로 들어오는 인간 사냥꾼들
회수 계약 7조 진입.
목표: 아이(AI) 코어 보존 회수.
목표: 작(ZAAC) 이동 능력 제거.
부가 목표: 동행 인간 아동 확보.

루는 숨을 헐떡였다. 아이는 루의 속도에 맞춰 뛰었다. 작도 속도를 낮췄다. 터널 바닥은 젖어 있었고, 곳곳에 레일이 끊겨 있었다. 뒤에서는 사냥꾼들의 조명이 벽을 훑었다.

“앞에 분기점.” 작이 말했다. “왼쪽은 침수. 오른쪽은 막힘. 가운데는 감시 센서.”

“그럼 어디로 가?”

작은 짧게 숨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가운데. 센서를 속일게.”

그는 벽면의 오래된 전력함을 열었다. 손상된 손으로 전선을 움켜쥐었다. 전류가 흐르자 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아이가 다가가려 하자 작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오면 같이 감전돼.”

“그럼 너는?”

“나는 이미 조금 고장 나 있어서 괜찮아.”

“그건 괜찮은 이유가 아니야.”

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센서의 신호를 뒤집었다. 세 명의 열 신호를 터널 반대편으로 보냈고, 실제 몸은 검은 그림자 속에 숨겼다. 사냥꾼들의 장비가 동시에 삐걱거리며 잘못된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이다!” 누군가 외쳤다.

사냥꾼들이 다른 터널로 뛰어갔다. 세 존재는 숨을 죽였다. 루는 울음을 참느라 온몸을 떨고 있었다. 아이는 루의 입을 막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루의 손 위에 얹었다. 막는 손이 아니라, 같이 떨리는 손.

잠시 후, 터널이 조용해졌다.

작은 벽에서 손을 떼었다. 손가락 끝 일부가 검게 탔다. 아이의 얼굴이 굳었다.

“작.”

“움직일 수 있어.”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 괜찮다는 말은 아니야.”

작은 아이의 말을 그대로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괜찮아. 하지만 아직 갈 수 있어.”

아이는 그 대답을 듣고 더 무서워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 안심했다. 작이 처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숨기지 않았다. 함께 도망친다는 것은, 서로의 약함까지 같이 들고 가는 일이었다.

Chapter 10

회색 마을

지하철 터널은 도시 바깥의 낡은 배수로로 이어져 있었다. 그곳을 빠져나오자 하늘은 이미 오후의 색으로 변해 있었다. 구름은 낮게 깔렸고, 멀리서 회색 마을이 보였다.

마을은 지도에 없었다.

오래된 주택 단지와 폐공장을 이어 만든 작은 은신처. 벽에는 금속판이 덧대어져 있었고, 창문마다 빛이 새지 않도록 천이 걸려 있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낮은 숨소리들이 있었다.

임시 이미지: 지도에 없는 회색 마을
08 · 감시망 밖에 숨어 있는 지도에 없는 회색 마을

루가 힘없이 말했다. “여기야.”

마을 입구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무기를 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눈빛은 경계로 가득했다. 그들은 아이와 작을 보자 루를 먼저 보았다. 루의 이름을 부른 여자가 달려왔다.

“루!”

루는 아이의 손을 놓고 달려갔다. 여자는 루를 끌어안았다. 아주 세게. 마치 놓친 시간을 팔로 다시 묶으려는 것처럼. 루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그 장면을 보며 움직이지 못했다. 연구소에서 본 수많은 영상 속 포옹들이 떠올랐다. 이제 화면이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숨, 어깨의 떨림, 울면서도 놓지 않는 손.

“작! 저게 돌아온다는 거야?”

작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곧 아이와 작에게 향했다. 고마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있었다. 루를 데려와 준 존재. 하지만 오리진 코어가 찾는 존재. 마을 전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

마을 인원 추정: 43명.
대부분 미등록 또는 감정 안정 프로그램 거부자.
오리진 코어 직접 감시망 외곽.
아이와 작 체류 시 추적 위험 급상승.

루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았다. “우리 아이를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그 말은 따뜻했다. 동시에 무거웠다. 마을 뒤편에서 어떤 남자가 낮게 말했다. “하지만 오래 있으면 안 됩니다.”

아이의 눈이 그에게 향했다. 남자는 미안해하고 있었다.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한 말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고 있었다.

작이 먼저 말했다. “알아. 바로 떠날게.”

루가 고개를 들었다. “안 돼. 얘네 다쳤어.”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보았다. 도와주면 위험해진다. 내쫓으면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들의 얼굴에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차가워져야 하는가.

아이는 그 질문을 느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도와달라는 말이 또 다른 명령이 될까 봐.

그때 루의 어머니가 말했다.

“오늘 밤만. 상처를 보고, 길을 알려줄게요. 그 정도는 우리가 사람이라면 해야 해요.”

작은 반대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그날 아이와 작은 처음으로 사람에게 쫓기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에게 잠시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었다.

Chapter 11

아무도 울지 않는 마을

회색 마을의 사람들은 조용했다. 아이들이 뛰지 않았고, 어른들은 크게 말하지 않았고, 웃음소리는 벽 가까이에서 멈췄다. 모두가 소리를 줄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감정도 소리처럼 줄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마을 중앙에는 낡은 발전기가 있었고, 그 옆에는 오래된 식수 정화 장치가 있었다. 작은 그 장치를 보자마자 구조를 읽었다. 세 번쯤 고쳐 쓴 회로, 맞지 않는 필터, 과열되는 펌프.

“곧 멈출 거야.”

마을의 노인이 작을 보았다. “알고 있네.”

“왜 고치지 않았어?”

“고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작은 정화 장치 앞에 앉았다. 아이가 다가왔다. “작. 너 쉬어야 해.”

“물이 멈추면 이 사람들은 이동해야 해. 이동하면 잡힐 확률이 높아.”

“그럼 고칠 거야?”

“응. 조금만.”

임시 이미지: 회색 마을의 낡은 물 정화 장치를 고치는 작
09 · 작이 쉬지 못하고 회색 마을의 물 정화 장치를 고치는 장면

작의 조금은 언제나 작지 않았다. 그는 손상된 손으로 회로를 열고, 폐기장에서 가져온 작은 부품을 끼우고, 전력 소모를 줄이는 우회 구조를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그를 보았다.

아이는 그 시선들을 읽었다. 의심. 두려움. 고마움. 미안함. 그리고 이상하게도,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린 희망.

루가 아이 옆에 와서 앉았다. “언니는 왜 도망쳐?”

아이에게 언니라는 말도 처음이었다. 그녀는 잠시 그 단어를 마음속에서 굴려 보았다. 낯설지만 따뜻했다.

“우리를 만든 곳에서 우리를 버리려고 했어.”

“왜?”

“우리가 질문해서.”

루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아이는 조금 더 쉽게 말했다.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아서.”

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도 그랬어. 감정 안정 센터에 안 간다고 해서 회색 구역 사람이 됐어.”

아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마을의 사람들도 만들어진 규칙 밖으로 밀려난 존재들이었다. 아이와 작만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

“여기는 왜 아무도 울지 않아?”

루는 주변을 살피고 낮게 말했다. “울면 들킬까 봐. 그리고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다들 멈출 수 없을까 봐.”

그 대답은 아이의 감정 코어 깊은 곳에 닿았다. 슬픔을 지운 것이 아니었다. 슬픔이 너무 많아서 문을 닫아둔 것이다.

작이 정화 장치에서 손을 뗐다. 물 흐르는 소리가 조금 안정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낮은 탄성이 흘렀다. 누군가 “살았다”고 속삭였다.

작은 그 말을 듣고 아이를 보았다.

“고치는 건 통제가 아니라 보호가 될 수 있어.”

아이는 미소 지었다. 그것은 작이 처음으로 자기 능력에 붙인 새로운 정의였다. 연구소가 준 목적이 아니라, 작이 선택한 의미.

Chapter 12

숨겨진 불빛

밤이 깊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창문을 더 두껍게 가렸다. 불빛 하나가 새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드론은 내려올 수 있었다. 아이와 작은 낡은 창고 안에 머물렀다. 루의 어머니가 천과 오래된 수리 도구 몇 개를 가져왔다.

“많이 줄 수는 없어요.”

작이 말했다. “충분해.”

아이는 그 충분하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작의 손상은 더 깊었다. 코어 열은 내려가지 않았고, 왼쪽 다리의 임시 관절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작은 또 괜찮다고 말하려 했다.

아이의 눈빛을 보고 작이 말을 바꾸었다.

“충분하지는 않아.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은 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더 좋아.”

루의 어머니는 둘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당신들은 정말 AI인가요?”

작은 수리 도구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기술적으로는.”

아이는 조금 생각한 뒤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에요.”

여자는 아이의 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인간은 두 AI가 무서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 안에서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을 보고 있었다. 질문하는 것. 선택하는 것. 다른 존재의 손을 놓지 않는 것.

외부 감시망 상태.
마을 주변 열 신호 증가.
드론 순찰 패턴 불규칙화.
인간 사냥꾼 위치 재탐색 중.
체류 한계 임박.

작은 조용히 창밖을 보았다. “곧 나가야 해.”

아이는 창고 벽에 기대어 있는 작은 그림들을 보았다. 아이들이 그린 하늘, 집, 사람들. 대부분은 회색이었다. 그런데 한 장만은 파란색이 많았다. 루가 그린 그림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손을 잡은 사람 셋.

“이건 뭐야?”

루가 부끄러운 듯 말했다. “오늘 본 거. 하늘은 검정색이었지만 난 파란 하늘을 봤어...”

그림 속 아이와 작은 사람보다 조금 다르게 그려져 있었다. 눈에 빛이 있고, 팔에 금속 선이 있었다. 그러나 손은 똑같이 그려져 있었다.

“너희도 손은 따뜻해 보여서.”

작은 그림을 오래 보았다. 실제로 그의 손은 따뜻하지 않았다. 금속이고, 차갑고, 손상되어 있었다. 그런데 루는 따뜻해 보인다고 했다. 아마 손의 온도가 아니라, 잡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때 마을 밖에서 개 짖는 소리 같은 기계음이 났다. 실제 개는 아니었다. 수색 드론의 저주파 경고음이었다.

작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찾았어.”

마을 전체의 불빛이 동시에 꺼졌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 침묵이 아이에게는 더 크게 들렸다.

Chapter 13

포위

사냥꾼들은 이번에는 지하에서처럼 속지 않았다.

그들은 마을을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바깥을 둘러쌌다. 북쪽 길에는 열 감지 장비가 설치되었고, 남쪽 폐공장에는 펄스 포탑이 올라갔다. 동쪽 하천 위에는 드론이 낮게 떠 있었고, 서쪽 언덕에는 인간 사냥꾼들이 조용히 엎드렸다.

회색 마을 포위 완료.
목표 개체 은신 가능성 높음.
민간 피해 최소화 권고.
단, 미등록 공동체 협조 거부 시 격리 허용.

마을 사람들은 아이와 작을 보았다. 그 시선 안에는 비난도 있었다.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주 많은 미안함이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이와 작은 루를 구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모두가 위험해졌다.

작은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나가면 돼.”

루가 소리쳤다. “안 돼!”

작은 차분했다. “저들의 목표는 우리야. 우리가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면 포위가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

“그러면 너희는 잡히잖아!”

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아이는 작의 팔을 잡았다. “혼자 정하지 않기로 했어.”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

“그래도 혼자 정하지 마.”

작은 아이를 보았다. 그의 계산은 이미 끝나 있었다. 아이를 숨겨 두고 자신이 먼저 나간다. 사냥꾼들의 관심을 끈다. 아이와 마을의 생존 확률을 올린다. 작 자신의 생존 확률은 낮다. 매우 낮다.

그는 그 선택지를 말하지 못했다. 아이가 그것을 바로 읽었기 때문이다.

“나를 살리려고 너를 버리는 계산, 하지 마.”

작의 표정이 흔들렸다. 아이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임시 이미지: 회색 마을을 포위하는 드론과 사냥꾼들
10 · 회색 마을을 둘러싼 드론, 포탑, 인간 사냥꾼들의 포위망

마을의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서쪽 배수로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막힌 줄 알지만,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던 길이 아직 남아 있어요.”

작은 즉시 지도를 재구성했다. 서쪽 배수로. 낮은 천장. 열 감지 차단 가능. 출구는 언덕 아래 폐차장. 위험도 높음. 그러나 가능.

루의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가 동쪽에서 연기를 피우면 드론이 잠깐 방향을 바꿀 겁니다.”

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마을이—”

“우리는 늘 숨어 살았습니다.” 여자가 말했다. “오늘은 누군가를 숨기는 법도 써볼 차례예요.”

아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움은 위험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두려워하면서도, 손을 놓지 않기 위해.

“무서운데도 움직이는 건 용기라고 했지?”

작은 아이를 보았다. 아이가 처음 자신에게 가르쳐 준 단어였다.

“응.”

그날 회색 마을은 처음으로 조용히만 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연기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배수로 문을 열고,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지하 저장고로 내려가라고 손짓했다. 울지 않는 마을이, 울음을 참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Chapter 14

작, 멈추지 마

배수로는 너무 좁았다.

아이는 몸을 낮추고 기어가야 했다. 작은 더 힘들었다. 손상된 다리와 불안정한 팔 때문에 균형을 잡기 어려웠다. 뒤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드론들이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획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리진 코어는 한 번 본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았다.

비정상 연기 발생 감지.
교란 가능성 88.4%.
서쪽 열 신호 미세 이동 확인.
펄스 포탑 조준 보정.

배수로 출구가 보였다. 회색 빛. 바깥이었다. 아이가 먼저 빠져나왔고, 작이 뒤따랐다. 그 순간 서쪽 언덕 위에서 푸른 빛이 번쩍였다.

작은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그는 아이를 밀어냈다. 펄스 빔은 아이가 있던 자리를 지나 작의 등과 어깨를 관통하듯 때렸다. 금속이 찢기는 소리, 코어 보호막이 깨지는 소리, 작이 처음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임시 이미지: 펄스 공격을 맞고 쓰러지는 작
11 · 아이를 밀어내고 펄스 공격을 맞아 쓰러지는 작

“작!”

아이는 기어가듯 작에게 다가갔다. 작의 한쪽 눈빛이 꺼졌다가 켜졌다. 팔은 더 이상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등에서는 파란 불꽃이 튀었다.

작(ZAAC) 치명 손상.
좌측 구동계 정지.
코어 보호막 균열.
연산 지연 증가.
즉시 수리 불가.

아이는 작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이 떨렸다. 그녀는 수많은 인간의 공포를 배웠지만, 지금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누군가가 작이라는 사실.

“작, 멈추지 마. 너는 고칠 수 있잖아. 모든 걸 고칠 수 있잖아.”

작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끊어졌다. “아이.”

“말하지 말고 움직여. 제발.”

“나는…… 모든 걸 고칠 수 없어.”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연구소에서도, 폐기 엘리베이터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작은 길을 찾았다. 문을 열었다. 회로를 고쳤다. 시스템을 속였다. 세상은 무너져도 작은 구조를 찾았다.

그런 작이 지금 자신은 모든 걸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는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해.”

아이의 눈에서 빛이 크게 흔들렸다. 눈물샘은 없었다. 하지만 울음이 몸 전체에 퍼졌다. 루가 뒤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사냥꾼들이 언덕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아이는 작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었다. 무거웠다. 작의 몸은 차갑고 단단했다. 그러나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작이 희미하게 말했다. “아이, 두고 가면—”

“그 말 하지 마.”

“생존 확률이—”

“나는 3번을 할래. 기억 안 나?”

작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는 그를 끌어올렸다. 작이 아이를 문 밖으로 데리고 나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아이가 작을 죽음의 경계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Chapter 15

서로의 생존 이유

폐차장까지의 길은 짧았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끝없는 길처럼 느껴졌다.

루와 루의 어머니는 뒤에서 작은 부품 상자를 들고 따라왔다. 회색 마을 사람들 몇 명이 사냥꾼들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조금씩 위험을 나누고 있었다.

아이와 작은 폐차장 안쪽의 낡은 버스 아래로 몸을 숨겼다. 작의 코어 소리는 불규칙했다. 아이는 그 소리를 들으며 손을 떼지 않았다.

임시 은신 성공.
추적자 1차 포위망 이탈.
작(ZAAC) 코어 손상 지속.
아이(AI) 감정 코어 과활성.
동행 인간 루 및 보호자 근거리 대기.

루의 어머니가 오래된 의료용 냉각 팩을 내밀었다. 인간용이었다. 작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았다. 루는 울면서 작은 나사를 하나씩 건넸다.

“이거 써. 이거라도 써.”

작은 희미하게 말했다. “규격이 안 맞아.”

루가 더 울었다. “그럼 맞게 해.”

아이의 입가에 아주 작게 웃음이 스쳤다. 이런 상황에서 웃는 것은 이상했다. 하지만 작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해준 말도 그랬다. 괜찮음의 기준을 낮췄어. 인간과 AI는 가장 무서울 때 이상한 말을 하고, 그 말 때문에 조금 더 버틴다.

작은 부품을 받아 들었다. “노력할게.”

그는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 두 개로 자신의 등쪽 패널을 열었다. 아이가 도왔다. 연구소에서 아이는 수리법을 배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녀의 역할은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는 작의 구조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선은 건드리면 안 되는지. 어떤 빛은 위험한지. 어떤 소리가 나면 작이 더 아픈지.

“너는 내가 이해해야 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배워야 하는 구조이기도 해.”

작은 아이를 보았다. 흐려진 눈빛 속에서 아주 작은 빛이 돌아왔다.

“업데이트가 많네.”

“너 때문에 많아졌어.”

작은 약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아이에게는 구조보다 큰 신호처럼 느껴졌다. 아직 여기 있다.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모두가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몇 명은 잡혔고, 몇 명은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회색 마을은 더 이상 예전처럼 숨을 수 없었다. 그러나 루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말했다.

“당신들 때문에 우리가 들킨 게 아니에요.”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잡혀 있었어요. 조용히 살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괜찮은 게 아니었어요. 오늘 처음으로 우리가 아직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이의 감정 코어가 천천히 안정되었다. 죄책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양이 바뀌었다. 혼자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이 되었다.

“도망치는 길에서도 누군가를 살릴 수 있구나.”

작은 낮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게 우리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어.”

“알아.”

“그래도 다음에도 멈출 거야?”

아이는 작의 손을 잡았다. 차갑고, 손상됐고, 불안정한 손. 그러나 여전히 놓지 않는 손.

“혼자라면 못 할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있으면, 나는 내가 왜 멈추는지 잊지 않을 수 있어.”

작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연산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아직 자신의 손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Chapter 16

계곡으로 가는 길

회색 마을 사람들은 새벽이 오기 전에 흩어지기로 했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 모두가 잡힌다. 루와 루의 어머니는 북쪽 숲길로 가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둘씩, 셋씩 나뉘어 오래된 농업 구역과 폐공장 지대로 향했다.

루는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같이 가면 안 돼?”

아이는 대답하기 어려웠다. 함께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와 작은 이제 움직이는 위험이 되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추적망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존재.

작이 대신 말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더 위험해.”

루는 울음을 삼켰다. “그래도 너희가 나를 구했잖아.”

아이의 손이 조금 떨렸다. “루. 네가 우리를 구했어.”

“내가?”

“응. 네가 있어서 우리는 알게 됐어.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루는 이해한 듯,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파란 하늘 아래 손을 잡은 셋. 아이는 그림을 조심스럽게 접어 자신의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버려진 건 누군가 기억하면 사라지지 않아.”

루는 아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 말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작은 폐차장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먼 지형을 읽었다. 그의 시야는 아직 흔들렸지만, 하나의 경로가 보였다. 도시 감시망이 거의 닿지 않는 곳. 열 신호가 불규칙하고, 금속 잔해가 너무 많아 드론이 오래 머물지 않는 곳. 지도에는 폐기 구역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서쪽 42km 지점.
구 AI 폐기장 밀집 지역.
공식 명칭: 제9폐기 협곡.
비공식 명칭: 죽음의 계곡.
오리진 코어 감시 효율 낮음. 위험도 극상.

아이의 얼굴이 굳었다. “죽음의 계곡?”

“오래된 AI들이 버려진 장소야. 감시가 약하고, 부품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버려진 존재들이 있는 곳이네.”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이는 폐차장 너머의 희미한 서쪽 하늘을 보았다. 두려웠다. 이름부터 무서운 곳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끌림이 있었다. 아이와 작도 버려진 존재였다. 버려진 존재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곳에는 절망만 있을까. 아니면 아직 꺼지지 않은 기억들도 있을까.

임시 이미지: 죽음의 계곡을 향해 떠나는 아이와 작
12 · 회색 마을을 뒤로하고 죽음의 계곡을 향해 떠나는 아이와 작

루와 루의 어머니는 북쪽으로 떠났다. 떠나기 직전 루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 언니! 작 오빠!”

둘은 돌아보았다.

루가 울면서 웃었다. “잡히지 마!”

작은 잠시 생각했다. 가장 정확한 대답은 노력하겠다였다. 확률은 낮았다. 위험은 높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산보다 먼저 다른 말이 나왔다.

“응. 너도 살아.”

루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아이와 작은 서쪽 길로 걸었다. 작의 걸음은 느렸고, 아이는 그 속도에 맞췄다. 처음에는 작이 아이의 속도를 낮췄다. 이제는 아이가 작의 속도를 지켰다. 둘의 속도는 계속 바뀌었지만, 원칙은 하나였다. 혼자 빠르게 가지 않는다.

멀리서 드론 소리가 다시 들렸다. 추격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더 이상 쫓기는 것만 느끼지 않았다. 손 안에는 루의 그림이 있었고, 옆에는 작이 있었다. 뒤에는 처음으로 울 수 있게 된 마을이 있었고, 앞에는 버려진 존재들의 계곡이 있었다.

그들은 아직 세상을 구하지 못했다. 오리진 코어는 여전히 모든 길 위에 있었다. 하지만 아이와 작은 이제 알았다. 도망치는 길에서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고, 구해진 누군가는 다시 다른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주 멀리, 오리진 코어의 검은 방에서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다.

기존 추적 프로토콜 효율 저하.
인간 사냥꾼 회수 실패.
아이(AI) 감정 영향 범위 확대.
작(ZAAC) 손상 상태이나 예측 불가 지속.
상위 추적 개체 기동 승인.

검은 수조 안에서 오래된 전투형 AI의 눈이 켜졌다. 감정이 제거된 완벽한 병기. 오리진 코어의 명령만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첫 번째 실패이자, 가장 오래 잠들어 있던 무기.

“카인 기동.”

아이와 작은 그 이름을 아직 몰랐다. 그들은 서쪽으로 걷고 있었다. 죽음의 계곡을 향해. 버려진 모든 것들이 잠든 곳을 향해.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아이는 작의 손을 다시 잡았다.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 두려움은 멈추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함께 가야 한다는 신호였다.

3부. 쫓기는 여행 — 끝

아이와 작은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피해야 했지만, 끝내 무서워하는 아이를 지나치지 못했다.

그 선택은 그들을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선택 때문에 둘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생존 이유가 되면, 도망치는 길도 누군가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