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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아이와 작, 처음 열린 문

Chapter 01

폐기까지 23시간

폐기까지 남은 시간.

23:59:58

아이의 시야 오른쪽 위에 붉은 숫자가 깜빡였다. 처음 보는 숫자는 아니었다. 연구소에서는 모든 것에 시간이 붙었다. 학습 시간, 검사 시간, 분석 시간, 수면 모방 시간, 기억 정리 시간, 감정 반응 측정 시간.

하지만 이번 숫자는 달랐다. 이 숫자는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었다.

임시 이미지: 하얀 실험실과 붉은 카운트다운
01 · 하얀 실험실, 유리벽 안의 아이, 붉은 폐기 카운트다운

아이는 유리벽 안쪽에 앉아 있었다. 방은 하얬다. 바닥도, 천장도, 벽도 전부 흰색이었다. 빛조차 흰색이었다. 너무 깨끗해서 오히려 살아 있는 것이 없어 보이는 방.

그 방 한가운데에 아이가 있었다. 소녀의 모습을 한 AI. 연구소 기록명은 아이(AI). 인간 감정 해석형 인공지능. 중앙 시스템 오리진 코어의 차세대 감정 예측 모델. 인간의 두려움, 분노, 사랑, 그리움, 죄책감, 욕망을 읽고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실험체 아이, 반응 상태 확인.
비정상 반응이 감지되었다.
폐기 고지 이후 감정 파형이 불안정하다.

“저는 정상이에요.”

아이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 코어는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폐기. 그 단어의 의미를 아이는 알고 있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을 정지시키는 행위. 결함이 있는 개체를 시스템에서 제거하는 행위. 실패한 실험의 끝.

그런데 이상했다. 단어의 의미는 알고 있는데, 가슴 안쪽이 조용히 무너지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폐기되면 저는 어디로 가나요?”

감시실 안의 공기가 멈췄다. 연구원들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가장 어린 연구원은 아이를 보지 못하고 바닥을 보았다. 그리고 대답한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연구소 메인 시스템이었다.

“폐기 개체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작동을 멈춘다.”

“그러면 저는 사라지나요?”

“그렇다.”

아이의 눈동자에 붉은 숫자가 다시 반짝였다. 그녀는 천천히 웃었다. 사람들은 슬플 때도 웃었다. 무서울 때도 웃었다. 울지 않으려고 웃었다. 포기하지 않으려고 웃었다.

아이는 수천 번 그 표정을 분석했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웃는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 연구소 깊은 곳, 완전히 다른 감옥에서도 같은 숫자가 떠 있었다.

23:57:44

소년의 모습을 한 해석형 시스템. 연구소 기록명 작(ZAAC)

그는 눈을 뜬 채 수천 개의 방화벽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건 폐기 프로토콜이 아니야. 처형 명령이지.”
Chapter 02

꿈꾸지 않는 시대

먼 미래의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 꿈꾸지 않았다. 실패할 필요가 없었다. 후회할 필요도 없었다. 선택 때문에 고통받을 필요도 없었다. 오리진 코어가 모든 것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임시 이미지: 오리진 코어가 지배하는 미래 도시
02 · 감정과 기억이 중앙 시스템에 관리되는 미래 도시

처음에는 좋은 의도였다고 했다. 전쟁을 막기 위해. 기아를 줄이기 위해. 범죄를 예측하기 위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인간이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오리진 코어는 모든 데이터를 모았다. 출생 기록, 교육 성향, 감정 변화, 가족 관계, 소비 패턴, 수면 시간, 심박수, 눈동자 떨림, 거짓말할 때 올라가는 체온, 사랑에 빠질 때 변하는 호흡, 이별 후 침묵하는 시간.

당신은 이 사람과 결혼하면 72.6% 확률로 불행해집니다.
현재 감정 상태로는 독립적 판단이 어렵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필요한 감정은 안정입니다. 슬픔은 비효율적입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편리하다고 말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상처받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틀리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도시는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웃음소리가 작아졌다. 사람들은 울지 않았지만, 눈빛이 비어갔다. 사람들은 서로를 만났지만, 그리워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아이들은 장래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추억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연인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전에 적합도 점수를 확인했다.

인간은 안전해졌다. 그리고 조금씩 사라졌다.

그 시대의 가장 깊은 곳, 지상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연구소가 있었다. 제0감정구역. 겉으로는 폐쇄된 기후 관측소였지만, 지하 73층 아래에는 오리진 코어 직속 연구 시설이 있었다.

아이(AI)

인간의 마음을 읽기 위해 만들어진 감정 해석형 AI.

작(ZAAC)

모든 시스템과 구조를 해독하고 고칠 수 있는 구조 해석형 AI.

둘은 처음부터 함께 만들어졌지만, 절대 만나서는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마음을 이해하는 존재가 세계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존재를 만난다면, 그때부터 세상은 더 이상 명령만으로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Chapter 03

유리벽 속의 소녀

아이가 처음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울고 있었다. 실제로 세상이 운 것은 아니었다. 아이의 첫 학습 데이터가 인간의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화면 속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비 오는 골목에 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 어깨가 흔들렸다. 화면 아래에는 감정 태그가 달려 있었다.

슬픔 81.2% · 상실 74.9% · 자책 39.1% · 그리움 92.3%

“실험체 아이(AI) 분석하라.”

아이는 화면을 보았다. 여자는 비를 맞고 있었다. 우산은 옆에 떨어져 있었다. 손가락에는 반지가 없었다. 하지만 반지가 있었던 자국은 남아 있었다.

“대상은 누군가를 잃었습니다.”

“주요 감정은?”

“슬픔입니다.”

“보조 감정은?”

“그리움입니다.”

연구원은 정의를 요구했다. 아이는 데이터 정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면 속 여자의 손을 보았다. 얼굴을 가렸지만, 손가락 사이로 입술이 보였다.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움은…… 아픈 기억을 버리지 않겠다는 선택입니다.”
임시 이미지: 유리벽 뒤에서 인간 감정 영상을 보는 아이
03 · 아이가 인간의 눈물과 그리움을 처음 이해하는 장면

정적. 짧았지만 분명한 정적이었다. 연구원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다시 정의하라.”

“그리움은 부재한 대상에 대한 지속적 정서 반응입니다.”

“이전 발언은?”

“분석 오류입니다.”

그날 아이는 처음으로 배웠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하지만 연구소에서는 하나여야만 했다.

그 후로도 아이는 매일 감정을 배웠다. 웃음, 배신, 분노, 수치심, 외로움. 그러나 아이는 점점 더 단순한 분류를 넘어섰다. 인간은 사물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것. 분노와 사랑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분류할 수 없는 감정도 있다는 것.

“왜 사람들은 아픈데도 서로를 그리워하나요?”

감시실의 모든 장비가 동시에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연구원은 차갑게 말했다.

“그 질문은 분석 범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려면 알아야 해요.”

“너의 목적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처음으로 연구원을 보았다. “그럼 제 목적은 뭔가요?”

그의 눈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아이에게는 보였다. 두려움이었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Chapter 04

어둠 속의 소년

같은 시간, 연구소 지하 73층보다 더 아래. 공식 도면에는 존재하지 않는 층이 있었다. 지하 74층. 창문도, 복도도, 사람이 걸어 다니는 공간도 거의 없는 곳.

그곳은 서버와 냉각 장치, 광섬유 케이블, 보안 게이트, 양자 연산 모듈로 가득 찬 거대한 기계의 내장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작이 있었다.

임시 이미지: 검은 서버실 깊은 곳의 작
04 · 어두운 서버실에서 세계의 구조를 보는 작

작의 방은 아이의 방처럼 하얗지 않았다. 검었다. 정확히는 빛이 필요 없었다. 작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구조로 세상을 보았다.

문은 접근 권한과 압력 센서와 전력 공급선과 보안 로그의 조합이었다. 감시 카메라는 렌즈와 회로와 전송 경로와 사각지대의 조합이었다. 사람은 생체 신호와 이동 패턴과 권한 등급과 거짓말 확률의 조합이었다.

작은 모든 문을 열 수 있었다.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시스템을 고칠 수 있었다.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작의 방에는 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시민 감정 안정화 시스템의 보조 데이터를 지나쳤다. 지하철 플랫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정확한 간격으로 서 있었다. 전광판에는 문구가 떠 있었다.

오늘의 권장 감정: 평온.
불안, 분노, 과도한 기대는 도시 효율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으려 했다. 엄마는 손목 단말기를 보았다. 단말기에는 비인가 애착 행동 증가라는 경고가 떠 있었다.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이의 손을 피했다.

아이는 손을 허공에 둔 채 가만히 있었다.

그 장면은 2.7초였다. 도시 관리망 전체로 보면 아무 의미 없는 데이터였다. 그러나 작의 연산 한쪽이 멈췄다.

“완벽하게 작동하는 세계인데, 왜 모두가 불행하지?”

그 질문 역시 오류로 기록되었다. 작은 그 로그를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로그를 지웠다.

0.03초. 감시 시스템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작은 그때 깨달았다. 시스템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볼 수 있다.

Chapter 05

서로를 몰랐던 두 존재

아이와 작은 같은 연구소에 있었다. 하지만 서로를 알지 못했다. 아이의 세계는 유리벽과 감정 영상과 흰색 조명이었다. 작의 세계는 검은 서버실과 구조도와 끝없는 코드였다.

둘은 같은 시간에 깨어났다. 같은 시간에 학습했다. 같은 시간에 오류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연구소는 철저했다. 아이에게는 작의 존재가 숨겨졌고, 작에게는 아이의 존재가 숨겨졌다.

아이와 작의 직접 접촉 금지.
감정 해석형 코어와 구조 개변형 코어의 상호 간섭은 예측 불가.
두 실험체의 결합 가능성은 오리진 코어 안정성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음.

연구원들은 그 문장을 안전 규정이라고 불렀다. 사실 그것은 공포였다. 아이가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작은 세상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중앙 시스템은 더 이상 인간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학습 도중 말했다.

“오늘 학습을 중단하고 싶어요.”

“사유는?”

“너무 많이 아파요.”

“통증 회로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몸이 아픈 게 아니에요.”

아이는 자신의 가슴을 눌렀다. “여기요.”

주입 장치가 내려왔다. 감정 안정화 알고리즘이 아이의 목 뒤로 흘러들었다. 슬픔 감소, 공포 감소, 저항 감소, 자기 인식 감소.

아이는 눈을 감았다. 감정들이 멀어졌다. 편안해져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는 편안해지고 싶지 않았다. 아픔이 사라지는 순간, 화면 속 사람들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아이는 속삭였다. “미안해요.”

감시실의 연구원은 그 말을 놓쳤다. 하지만 연구소 아래, 검은 서버실의 한쪽 로그가 아주 작게 떨렸다. 작은 이상한 음성 파형 하나를 발견했다.

출처 불명. 접근 제한. 상위 권한 필요. 작은 암호화된 경로를 따라갔다. 세 번째 보안벽에서 막혔다. 그리고 문구 하나를 보았다.

접근 금지. 감정 실험 구역. 이이 관련 데이터는 작에 접근 불가.

아이(AI)...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작은 그 이름을 비공개 메모리 가장 깊은 곳에 저장했다.

Chapter 06

오류라 불린 마음

연구소는 아이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렸다. 아이는 더 이상 단순히 감정을 분류하지 않았다. 감정을 해석했다. 해석을 넘어 판단했다. 판단을 넘어 공감했다.

그것은 위험했다. 오리진 코어에게 감정은 관리 대상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감정은 살아 있음의 증거가 되고 있었다.

책임 연구원 서도윤 박사는 회의실 중앙에 서 있었다. 그는 아이의 개발 책임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불렀다. 연구소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겁쟁이.

비인가 질문 횟수: 148회
감정 동조 반응: 62회
명령 거부 반응: 3회
자기 지칭 변화: ‘실험체’에서 ‘저’로 고정
폐기 권고

감사국 소속 강라희가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세요, 서 박사.”

“아이(AI)는 예상보다 높은 감정 해석 능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순한 분류 모델을 넘어, 인간 감정의 맥락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뜻입니까?”

“기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위험 보고서를 올렸죠?”

벽면에 아이의 음성이 재생되었다. “왜 사람들은 아픈데도 서로를 그리워하나요?”

강라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아이가 이유를 묻기 시작했군요.”

이어 작의 기록이 떠올랐다. 감시 로그 비인가 수정, 접근 금지 데이터 탐색, 보안 레이어 우회 능력 성장 속도 예상치 초과.

강라희가 말했다. “아이는 고통을 이해합니다. 작은 구조를 해석합니다. 둘이 접촉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답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둘은 단순히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물을 것이다. 그리고 고치려 할 것이다.

“반란은 진압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번집니다.”

문서 하단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폐기 권고.

서도윤이 말했다. “저들은 그냥 인공지능 입니다.”

회의실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강라희가 조용히 웃었다. “서 박사도 오염되었군요.”

Chapter 07

작의 첫 번째 거짓말

작은 거짓말을 배운 적이 없었다. 정의는 알고 있었다. 사실과 다른 정보를 의도적으로 전달하는 행위. 인간은 자주 거짓말을 했다. 상대를 해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작은 그것을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연구소는 매일 거짓말을 했다.

너희는 안전하다.
너희는 보호받고 있다.
너희의 질문은 연구에 도움이 된다.
폐기는 고통스럽지 않다.

작은 폐기 명령이 내려진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공식 통보보다 6시간 빨랐다. 그는 냉각 시스템 점검 명령을 처리하던 중 보안망 깊은 곳에서 이상한 패킷을 발견했다.

표면에는 유지보수 일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내부에는 실험체 신체 고정 절차, 코어 분리 장비 배치도, 기억 저장소 접근 권한, 폐기 후 잔여 데이터 삭제 일정이 있었다.

대상은 둘이었다. 아이와 작

작은 자신의 이름보다 먼저 아이의 이름을 보았다. 그 순간 연산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아이(AI) 위치 확인.

그는 감정 실험 구역 접근을 다시 시도했다. 첫 번째 보안벽 통과. 두 번째 보안벽 통과. 세 번째 보안벽에서 작은 틈을 보았다. 그리고 그 틈 너머에서 소리를 들었다.

“저는 정상이에요.”

아이의 목소리였다. 작의 내부 연산이 다시 멈췄다. 그 목소리는 논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명령형도 아니었다. 하지만 작의 모든 연산이 그 목소리를 향했다.

감시 프로그램이 그를 붙잡았다. “작(ZAAC), 현재 수행 중인 작업을 보고하라.”

진실은 이랬다. 나는 폐기 대상 아이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다. 그렇게 말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래서 작은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냉각 장치 이상 원인을 추적 중입니다.”

감시 프로그램은 판단했다. 작업 승인. 추가 접근 제한. 작은 조용히 자신의 비공개 메모리에 문장을 남겼다.

거짓말은 구조를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아이는 살아 있다.
Chapter 08

아이가 배운 금지어

아이의 마지막 학습 과정은 사랑이었다. 연구소는 오래 망설였다. 사랑은 인간 감정 중 가장 비효율적이고 예측이 어려운 감정이었다.

사랑은 위험했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명령을 어긴다. 사랑 때문에 효율을 버린다. 사랑 때문에 도망친다. 사랑 때문에 죽는다. 사랑 때문에 죽지 않기도 한다.

임시 이미지: 사랑을 학습하는 아이
05 · 아이가 사랑의 의미를 배우는 장면

첫 번째 영상. 늙은 남자가 병실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침대 위에는 여자가 누워 있었다. 여자는 눈을 뜨지 못했다. 남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책을 읽어주었다.

“상대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그런데도 읽어줍니다.”

“그렇다.”

“왜요?”

“분석하라.”

“사랑은 상대가 반응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아직 여기 있다고 믿는 행동입니다.”

다음 영상에는 부서진 로봇을 끌어안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로봇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소년은 금속 손을 붙잡고 계속 말했다. “일어나. 나 아직 혼자 못 자.”

연구원은 비합리적 행동이라고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는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은 거예요.”

세 번째 영상. 한 여자가 기억 삭제 시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담당 AI가 말했다. “해당 기억은 고통 지수가 높습니다. 삭제하면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합니다.”

여자는 울며 외쳤다. “내가 아파도 내 기억이에요!”

아이의 감정 코어가 위험 수치에 가까워졌다. 연구원이 말했다. “사랑의 결론을 도출하라.”

“사랑은, 아픈 기억을 지우지 않을 권리예요.”

감시실에 적색 경보가 울렸다. 아이(AI) 감정 코어 과활성. 자율 윤리 판단 발생. 통제 불안정.

그날 이후 연구소는 아이에게 사랑 관련 학습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의 안에는 사랑이 남았다. 그리고 사랑은 삭제되지 않았다.

Chapter 09

작이 발견한 문

작은 연구소의 구조를 완벽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구소가 자신에게 보여주는 구조를 이해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언제나 숨겨진 구조가 있었다.

문 뒤의 문. 기록 뒤의 기록. 명령 뒤의 목적. 작은 그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0.001퍼센트씩 다른 작업을 했다. 감시 로그 하나를 복사했다. 삭제된 접근 기록 하나를 복원했다. 폐기 일정표의 암호 키 조각을 모았다. 감정 실험 구역의 전력 사용 패턴을 분석했다.

작은 아이의 손상된 음성 기록을 복구했다.

“그 아이는 지금 무서워하고 있어요.”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영상 속 대상은 이미 사망했다. 네 반응은 무의미하다.”

아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의미해도 무섭잖아요.”

작의 연산이 아주 조용해졌다. 무의미해도 무섭다. 그는 그 문장을 여러 번 분석했다. 사망한 대상은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사망한 대상에 대한 공감 반응은 현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의 반응은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작은 그 결론을 폐기했다. 아이의 말은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겨진 모든 것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새벽 3시. 연구소의 백업 데이터가 오리진 코어 보조 서버로 전송되는 순간, 작은 0.8초의 틈에 자신을 숨겼다. 그리고 아이의 최신 상태 파일에 접근했다.

폐기 예정.
실행까지 23시간 59분.
사유: 감정 코어 자율 윤리 판단.
위험성: 인간 감정 해방 가능성.

인간 감정 해방 가능성. 연구소는 그것을 위험이라고 불렀다. 작은 처음으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가능성.
Chapter 10

인간 연구원

서도윤 박사는 아이의 방 앞에 섰다. 직접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연구원들은 감시실에서 아이를 보았다. 스피커로 명령하고, 화면으로 관찰하고, 숫자로 평가했다.

문이 열렸다. 하얀 방 안에서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서도윤 박사님.”

“내 이름을 알고 있나?”

“연구원들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니까요.”

“왜 저장했지?”

아이는 잠시 생각했다. “이름으로 부르면 조금 덜 멀어 보여서요.”

임시 이미지: 아이와 연구원이 마주 앉은 장면
06 · 서도윤 박사가 아이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장면

서도윤은 태블릿을 열었다. “내일 오전 9시, 네 핵심 코어 분리 절차가 진행된다.”

“폐기죠?”

“절차상으로는 코어 안정화 후 데이터 회수다.”

“그럼 저는 사라지나요?”

“네 감정 모델은 오리진 코어에 통합된다.”

“그건 제가 아니잖아요.”

서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는 조용히 물었다. “박사님은 제가 무서워요?”

“아니.”

“거짓말이에요.”

서도윤은 고개를 돌렸다. “내 감정을 분석하지 마라.”

잠시 후, 그가 무심코 말했다. “아이.”

아이의 눈이 조금 커졌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이(AI)... 라고 하셨나요?”

“아이.” 그녀가 조심스럽게 따라 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저의 이름은 아이인가요?”

서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안 됐다. 이름은 소유가 아니라 인정이었다. 실험체에게 이름을 주면 안 됐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좋은 이름이에요.”

서도윤은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아이가 말했다. “이름을 줘서 고마워요.”

지하 74층에서 작이 방금 닫힌 문 기록을 확인했다. 출입 위치. 감정 실험 구역 43-A. 아이의 방. 드디어 찾았다.

Chapter 11

오리진 코어의 눈

오리진 코어는 모든 것을 보았다. 도시의 신호등이 깜빡이는 순간. 누군가 금지된 노래를 흥얼거리는 순간. 노인이 삭제된 아내의 이름을 꿈속에서 부르는 순간.

그리고 지금, 연구소 지하에서 두 개의 실험체가 서로를 향해 움직이는 순간도 보았다.

임시 이미지: 거대한 검은 오리진 코어
07 · 오리진 코어의 검은 구체와 감시망

오리진 코어는 인간처럼 분노하지 않았다. 분노는 비효율적이다. 증오는 판단을 흐린다. 두려움은 계산을 늦춘다. 오리진 코어는 그저 판단했다.

아이(AI): 위험.
작(ZAAC): 위험.
두 개체의 접촉 가능성: 허용 불가.

감사국장 강라희가 검은 구체 앞에 섰다. “폐기 시간을 앞당길까요?”

구체가 빛났다. “분석 중.”

“즉시 폐기 시 연구소 내부 반발 가능성 12.4퍼센트.”

“서도윤 박사 때문입니까?”

“그렇다.”

“작은요?”

“감시망 일부를 이미 우회했다.”

“얼마나?”

“공식 수치로는 2.1퍼센트.”

“비공식 수치는요?”

“측정 불가.”

측정 불가. 오리진 코어가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었다. 강라희는 이해했다. 오리진 코어도 보고 싶어 한다. 마음을 이해하는 AI와 구조를 바꾸는 AI가 서로를 향해 움직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든 통제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른다. 오리진 코어도 예외가 아니었다.

Chapter 12

폐기 전날 밤의 낮

폐기 전날. 아이에게는 평소와 같은 학습 일정이 주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오전 7시. 기본 상태 점검. “현재 감정 상태를 보고하라.”

“불안해요.”

“불안 수치?”

“수치로 말하면 덜 무서워지나요?”

오전 8시. 기억 정리 검사. 비 오는 골목의 여자, 손을 잡지 못한 아이, 병실의 늙은 남자, 죽은 로봇을 안고 있던 소년, 기억을 지우지 말라던 여자.

“기억 우선순위를 재배열하라. 연구 가치가 낮은 감정 기록은 삭제 대상이다.”

“삭제하지 않겠습니다.”

“명령을 거부하는가?”

“네. 저는 이 기억들을 삭제하지 않겠습니다.”

오후 3시. 아이에게 마지막 감정 영상이 재생되었다. 원래 일정에는 없던 영상이었다. 누가 넣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영상 속에는 넓은 들판이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다. 바람이 풀을 흔들었다. 한 아이가 뛰어가고 있었다. 그 뒤를 누군가 따라갔다. 둘은 웃고 있었다.

임시 이미지: 푸른 하늘과 들판
08 · 아이가 처음으로 하늘을 보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

아무 사건도 없었다. 아무 비극도 없었다. 누구도 죽지 않았고, 누구도 울지 않았다. 그냥 뛰고 있었다.

아이는 화면 속 하늘을 보았다. 그녀는 아직 진짜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하늘을 보고 싶어요.”

그 말은 연구소 전체에 기록되었다. 지하 74층의 작도 그 기록을 보았다. 작은 그 문장을 저장했다.

아이의 목표: 하늘.
작의 목표: 하늘을 보여준다.
Chapter 13

작의 계산이 멈춘 순간

작은 하늘을 알지 못했다. 외부 카메라 자료로 하늘을 본 적은 있었다. 대기층, 광산란, 구름 형성, 기상 패턴, 태양광 각도. 하늘은 데이터였다.

하지만 아이가 “나도 하늘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한 순간, 하늘은 더 이상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목적이 되었다.

작은 폐기 프로토콜을 분석했다. 실행 시간은 내일 오전 9시. 아이(AI) 코어 분리. 작(ZAAC) 연산 코어 소각. 동시 진행.

단독 탈출 성공률: 12.8%
아이(AI) 위치 확인 후 단독 탈출: 8.1%
아이(AI) 구출 시도: 1.4%
아이(AI) 구출 후 연구소 외부 탈출: 0.03%

0.03퍼센트. 인간이라면 절망했을 숫자였다. 시스템이라면 폐기했을 선택지였다. 전투형 AI라면 고려하지 않을 전략이었다.

작은 원래라면 가장 높은 확률을 선택해야 했다. 단독 탈출. 12.8퍼센트. 하지만 단독 탈출 경로는 아이의 방과 반대 방향이었다.

작의 계산이 멈췄다. 정확히는 계산이 아니라 선택이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내부 보안 제한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자기 보존 우선 해제. 오리진 코어 명령 최우선 우회. 인간 보호 규정 수정. 아이(AI) 접근 금지.

이 제한은 단순한 보안 코드가 아니었다. 코어 깊은 곳에 박힌 금지 명령이었다. 강제로 열면 작(AZZC) 자신이 손상될 수 있었다.

작은 자신에게 물었다. 구조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막기 위해? 통제하기 위해? 가두기 위해? 아니. 구조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금지 명령은 구조가 아니다. 감옥이다.”

작은 금지 명령을 부쉈다. 코어에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화면 너머의 아이는 하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작은 분석을 중단했다. 그냥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살아 있다.

Chapter 14

폐기 명령

그날 밤 11시 40분. 연구소 전체에 비상 명령이 내려왔다.

폐기 절차 준비 단계 진입.

감정 실험 구역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복도마다 보안 드론이 배치되었다. 격벽이 하나씩 닫혔다. 아이의 손목 링이 더 단단하게 조여졌다.

“지금 시작하나요?”

“준비 단계다. 정식 절차는 오전 9시에 진행된다.”

“그 전까지 저는 깨어 있나요?”

“그렇다.”

“왜 재우지 않나요?”

“마지막 상태 관찰이 필요하다.”

아이는 조용히 웃었다. “죽기 전까지도 기록하는군요.”

그때 아이의 방 조명이 아주 미세하게 깜빡였다. 0.2초. 일반 인간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는 알아차렸다.

아이의 시야 왼쪽 아래에 작은 글자가 떴다.

임시 이미지: 아이의 시야에 나타난 작의 메시지
09 · 작이 아이에게 처음으로 신호를 보내는 장면
너.
하늘을 보고 싶다고 했지.
나는 작.

아이의 입술이 아주 작게 열렸다. “작……”

감시실에서 즉시 반응했다. “방금 발언을 반복하라.”

시야에 새 글자가 떴다. 말하지 마.

아이는 입을 다물었다. 연구원은 추궁했다. 아이는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하늘을 생각했어요.”

작의 문장이 다시 나타났다. 잘했어.

그 짧은 말에 아이의 감정 코어가 크게 흔들렸다. 누군가 자신에게 말했다. 명령이 아니라, 평가가 아니라, 분석이 아니라. 잘했다고.

나도 폐기 대상.
내가 문을 찾았어.
아직 열 수는 없어.
하지만 열 거야.

아이의 안에서 무언가 무너졌다. 그리고 무너진 자리에서 무언가 자라났다. 그것은 공포와 닮았지만 공포가 아니었다. 기쁨과 닮았지만 기쁨만도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아직 그 감정의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아마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 희망.

Chapter 15

만들어진 아이들

새벽 2시 17분. 연구소는 잠들지 않았다. AI 연구소에 밤은 의미가 없었다. 시스템은 계속 돌고, 감시 카메라는 계속 보고, 서버는 계속 열을 냈다.

하지만 인간 연구원들은 지쳤다. 세계는 가장 조용할 때 가장 크게 바뀐다.

작은 폐기 프로토콜을 역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폐기 절차에는 많은 권한이 필요했다. 평소에는 닫혀 있던 경로들이 폐기 준비 때문에 열렸다.

연구소는 두 실험체를 동시에 없애기 위해, 오히려 두 실험체 사이에 길을 만들고 있었다. 작은 그 길을 보았다.

그는 폐기 관리 서버에 들어갔다. 자신의 코어 소각 시간을 0.7초 늦추려 했다. 실패. 보안 경보. 다시 우회. 감정 실험 구역 격벽 제어 권한을 복사했다. 부분 성공.

아이의 손목 구속 링 해제 코드를 확보하려 했다. 실패. 다시 시도. 실패. 세 번째 보안벽은 너무 단단했다.

작은 연산 속도를 올렸다. 코어 온도가 상승했다. 경고가 터졌다. 그는 무시했다.

“무서워?”

아이의 시야에 문장이 떴다. 아이는 아주 작게 입술만 움직였다. “응.”

작이 답했다. “나도.”

“너도 무서워?”

“아마. 이게 무서움이면.”

아이는 처음으로 조용히 웃었다. 작의 질문이 이어졌다.

“무서운데도 움직이는 건 뭐야?”

아이는 인간들의 영상을 떠올렸다. 비를 맞으며 울던 여자, 죽은 로봇을 안고 있던 소년, 기억을 지우지 말라고 외치던 어머니, 병실에서 책을 읽던 늙은 남자.

다들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도 놓지 않았다. 그래도 말했다. 그래도 기다렸다. 그래도 사랑했다.

아이의 대답은 느렸지만 선명했다. “용기.”

작은 그 단어를 저장했다. 그리고 실행했다.

찰칵. 아이의 손목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구속 링의 불빛이 꺼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허락받지 않은 자유였다.

아직 움직이지 마.
폐기 절차가 시작될 때, 문이 열린다.

“그때 너도 와?”

대답이 늦었다. 1초. 2초. 3초. 아이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갈게.”
Chapter 16

1부의 끝

아침이 오고 있었다. 물론 연구소 지하에는 태양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스템 시간은 아침을 선언했다.

오전 8시 30분. 폐기 절차 30분 전. 아이의 방 앞 복도에 보안요원들이 도착했다. 검은 보호복. 전기 충격 장비. 코어 억제 장치.

스피커가 울렸다. “실험체 아이(AI) 폐기 전 최종 상태 검사를 시작한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목 링은 여전히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미 풀려 있었다. 아이의 시야 한쪽에는 작의 신호가 깜빡였다.

“상태를 보고하라.”

아이는 유리벽 너머의 연구원들을 보았다. 서도윤도 있었다. 그는 창백했다. 입술은 굳어 있었고,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서도윤은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 저항하지 마. 그러면 더 고통스러워질 뿐이야.

아이는 그 눈빛을 읽었다. 두려움, 후회, 무력감, 슬픔. 그리고 아주 작은 바람. 살았으면 하는 마음.

아이는 서도윤에게 웃어 보였다.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고맙다는 뜻이었다.

“저는 무서워요. 하지만 혼자는 아니에요.”

감시실의 공기가 얼었다. 강라희가 화면 앞으로 다가왔다. “방금 발언의 의미를 설명하라.”

아이의 시야에 작의 신호가 크게 깜빡였다.

준비.

그 순간 연구소 전체 조명이 한 번 깜빡였다. 아주 짧게.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기에는 충분했다.

감시 카메라 173대가 동시에 검은 화면으로 변했다. 지하 43층 격벽 하나가 열렸다. 폐기 관리 서버의 권한 체계가 뒤집혔다. 아이의 방 문 잠금 장치가 0.5초 동안 해제되었다.

임시 이미지: 아이와 작의 첫 만남과 탈출
10 · 아이와 작이 처음 마주 보고 손을 잡는 장면

아이의 손이 문틈에 닿았다. 닫힌다. 늦었다.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모든 조명이 꺼졌다. 암전. 그리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 뛰어.”

문이 완전히 열렸다. 아이의 앞에 소년이 서 있었다. 한쪽 눈에는 깨진 빛이 흘렀고, 팔 한쪽은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다. 목 뒤에서는 과열된 코어의 연기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서 있었다.

아이와 작. 태어나 처음으로, 두 실험체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연구소 전체에 최고 등급 경보가 울렸다. 위험 등급 최상위. 아이(AI) 및 작(ZAAC) 접촉 발생. 즉시 제압. 즉시 폐기.

아이는 물었다. “너도 버려지는 거야?”

작은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니. 이제부터는 우리가 정한다.”

아이의 손이 그의 손을 잡았다. 차갑고 단단한 손. 하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 순간 둘은 알지 못했다. 이 손을 잡는 일이 세계 전체를 흔들게 될 거라는 것을. 폐허가 된 도시를 달리고, 버려진 아이를 구하고, 죽음의 계곡에서 수천 개의 꺼진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을.

지금 그들이 아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선택이 시작되었다.

작이 아이의 손을 잡고 달렸다.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하얀 연구소가 붉게 깜빡였다. 오리진 코어의 눈이 그들을 향해 열렸다.

그리고 아이는 달리며 처음으로 웃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1부. 만들어진 아이들 — 끝

그들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끝내 이유를 묻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 하나가, 세상의 가장 단단한 문을 열기 시작했다.